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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석

魚允奭

1846. 5. 6 ~ 1898.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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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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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廣州)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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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관련 사건

  • · 전기의병(호좌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5) 1846년 5월 6일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구천면(九川面) 고덕리(高德里, 현 서울특별시 강동구 고덕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공필(公弼)이고 호는 심재(心齋)이다.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이고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과 동문이다. 경기 지역 화서학파로서 호좌의병부대에 참여하고, 이후 유인석과 함께 서간도로 망명하였다.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이후 화서학파가 김평묵(金平默)계와 유중교계로 분화될 때 유중교계에서 활동하였다. 특히, 유중교가 스승인 이항로의 심설(心說)을 조보(調補)한다는 의도에서 조보의 글을 중암(重菴) 김평묵에게 보내면서 일어난 화서학파 심설논쟁에서 김평묵계의 홍재구(洪在龜)·최익현(崔益鉉)·유기일(柳基一) 등과 편지나 방문을 통해 논쟁하였다. 이 심설논쟁은 1891년 11월 김평묵의 임종 한달 전에 유중교가 「선사심설정안(先師心說正案)」을 품정함으로써 1차로 매듭지어졌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고 이어서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단발령이 시행되자 “화서 이항로, 중암 김평묵, 성재 유중교 세 분 선생님의 문하들이 일생을 통해 강설(講說)한 것은 서학을 배척하고 왜적에 대해 복수하는 것 뿐이다. …… 나라를 사랑하고 오랑캐를 물리치는 의거에 누가 창의(倡義)하지 않으며, 원수를 갚고 형세를 보존하는 일에 누가 거사하지 않겠는가. 오늘의 일을 차마 어찌 말로 다하랴. 일을 하는데 우리는 죽지 않으면 그만이고, 죽는다 해도 대의를 펴서 천하를 구하기 위해 죽으니 죽을 명분을 찾은 것이다”라고 하여 의병 봉기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1896년 2월 유인석이 영월(寧越)에서 호좌의병부대 총대장으로 오르고 제천(堤川)·충주(忠州) 등지에서 의병운동을 전개할 때 아들 어경선(魚敬善)과 함께 호좌의병부대에 가입하여 적극 활동하였다. 그러나 1896년 5월 25일 제천전투에서 호좌의병부대가 패하고 근거지인 제천을 빼앗기게 되자 더 이상 국내에서 의병운동을 전개하기 어려워졌다. 그리하여 새로운 의병운동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호좌의병부대는 서북행을 결정하였다. 이후 호좌의병부대가 황해도·평안도를 거쳐 압록강을 건너 옛 성현의 땅인 서간도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서간도에 도착하자마자 청나라 회인현(懷仁縣) 현재(縣宰, 지방관)인 서본우(徐本愚)의 계책에 넘어가 호좌의병부대는 무장해제를 당하였다. 결국 의병부대는 해산되었고 대부분의 의병은 조선으로 귀국하였지만 유인석과 함께 귀국하지 않고 근거지 개척에 나섰는데 순조롭지 못하였다. 근거지 개척과정에서 이용태(李容泰)·최문환(崔文煥) 등과 갈등을 겪었다. 이처럼 유인석과 함께하면서 갖은 고초를 겪다가 서간도에서 돌아온 직후인 1898년 2월 17일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심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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