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구정서

具禎書

1882. 3. 18 ~ 1907. 7. 16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구정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기 광주(廣州)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상동교회 엡웻청년회
  • · 구국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중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2년 3월 18일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도척면(都尺面) 궁평리(宮坪里)에서 태어났다. 호는 흥국(興國)이며, 동대문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였다. 일제의 국권침탈 시기에 상동교회(尙同敎會) 엡윗청년회에서 활약하다가 을사늑약 이후 낙향, 아버지 구연영(具然英)과 같이 활동하였다. 구연영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이후 김학락·조성원 등과 의병을 일으켜 이천수창의소를 결성하였다. 백현(魄峴) 전투, 이현(梨峴) 전투, 남한산성 전투에서 활약한 바 있다. 이후 기독교에 입문하여 1897년 서울 상동교회에서 엡윗청년회를 조직하여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다. 1902년부터 이천을 중심으로 전도사로 활동하였다. 1907년 정미의병이 일어나자 구연영은 수십 명의 동지와 함께 구국회(救國會)를 조직하고 신도 대회를 통해 일진회(一進會)를 성토하며 항일 투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구국 활동을 펼쳤다. 16세이던 1897년경부터 구연영을 따라 상동교회 엡윗청년회 등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청년회는 15세 이상 35세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청년회는 교회 내에 학교를 설립하여 초등교육과 청년 교육을 실시하였다. 회원들은 독립협회(獨立協會)나 신민회(新民會) 회원이던 사람도 있었고, 의병 출신자나 무관학교 출신 등 국권 회복 운동을 벌이기 위해 들어온 사람이 많았다. 이후 청년회의 활동이 보안회와 관련되고 일진회를 성토하고 국가를 위한 기도회를 여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을사늑약 반대 상소 운동’과 가두연설을 펼치는 등 국권 회복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상동교회는 일제의 감시 아래 들어가고 엡윗청년회는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활동을 펼치다가 아버지 구연영이 조직한 구국회 청년부에서 활동하였다. 여주와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1907년 일진회원의 밀고로 부친과 함께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나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7월 16일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서진교⋮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