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범
安希範1892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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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1)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봉명면(鳳鳴面) 금평리(金坪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35년 당시 43세인 것으로 보아 1892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안희범(安熙範)과 안제우(安濟愚)·안승우(安承宇) 등을 사용하였다. 1917년 무렵 중국 북간도로 이주하여 농업과 한인 아동 교육에 종사하던 중, 1919년 만세운동의 영향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중국 왕청현(汪淸縣)에 근거를 두고 구춘선(具春先)과 김일제(金一濟)가 주도하여 조직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1920년 가입하여 선전 업무를 담당하였다. 1920년 (음)8월 28일 대한국민회의 명령에 따라 동지를 규합하고 군자금을 모집할 목적으로 김관용(金寬用)과 함께 자신의 고향 지역인 평남 평양(平壤)과 순천 지역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1920년 12월부터 1921년 5월까지 동료들과 함께 다섯 차례에 걸쳐서 부호들의 집을 습격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2년 1월 평남 개천군(价川郡) 외서면(外西面)에 사는 부호 현기덕(玄基德)을 습격하여 군자금으로 현금 6백 원을 모금하였고, 같은 해 9월 동료 7명과 함께 성천군(成川郡) 난산주재소(卵山駐在所)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부장을 사살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중국 지린성(吉林省) 액목현(額穆縣) 교하(蛟河) 삼송진(杉松鎭)에 거주하며 지내던 중 1934년 2월에 중국 만주의 일본영사관에 붙잡혀 평양으로 압송되었다. 붙잡힌 후 십여 년 전의 과거 활동에 대해서 1935년 10월 31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강도살인죄, 강도상인(强盜傷人)죄, 강도죄 등으로 무기징역을 받았지만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1936년 3월 3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5년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1936년 7월 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후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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