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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仁宅

安仁

188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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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安仁宅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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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양덕(陽德)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양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안인택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안인택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7) 본적지는 평안남도 양덕군(陽德郡) 화촌방면(化村坊面) 백석리(白石里)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9년 당시 24세로 1886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는 한자가 다른 안인택(安仁澤)을 사용하였다. 1908년 (음)8월 평남 맹산군·양덕군 등지에서 의병장으로서 활동하였다. 의병을 일으키기 위해 고향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기 시작하였다. 1908년 (음)8월 16일 평남 양덕군 오강면(吳江面) 용담리(龍潭里) 경양동(慶陽洞)에 살고 있는 박응규(朴應奎)의 집에서 주변 주민들을 모아 금전을 줄 것을 요청하였다. 주민들이 불응하자 거듭 부탁하여 이날 돈 30원을 모금하였다고 한다. 이후 오강면 용포리(龍浦里) 담파동(潭波洞)에 있는 한명윤(韓明潤)의 집에서 주민들로부터 금 20원의 군자금을 모았다고 한다. 그러다 1908년 10월 맹산(孟山)헌병대에게 오강면에서 붙잡혔다. 그런데 체포되기 이전에 귀순을 시도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판결문에 따르면, 여러 증인이 맹산헌병대로부터 1908년 10월 12일 귀순표(歸順表)를 받은 사실이 있음을 확인해주었다. 하지만 재판에서는 귀순 사실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귀순표를 발급받은 적이 있다고 여러 명의 증인이 언급한 맹산헌병대분견소 측에서 취급한 사실이 없다고 검사 카키하라 타쿠로(柿原琢郞)에게 보고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 주둔 일본군 헌병대장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郎)가 경무국장 마쓰다 시게루(松田茂)에게 보냄으로써 남게 된 자료에 의하면, 1908년 10월 이후 귀순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 귀순 시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연유에서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거부당하였다. 일제는 귀순의사를 믿지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909년 3월 24일 평양공소원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종신징역을 받았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4월 16일 대심원에서 최종 기각당하여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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