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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국빈

權國彬

190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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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권국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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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봉산(鳳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봉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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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독립청년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901년경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사리원면(沙里院面) 구천리(駒泉里)에서 태어났다. 권근파(權瑾波)·왕억(王億)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20년 6월 6일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文井面) 어수리(御水里) 곽익호(郭益浩)의 집에서 열린 한국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 조선독립청년단의 지회 결성식에 참여하였다. 이 자리에는 곽익호를 비롯해 손재흥(孫再興)·김청풍·이정률(李廷律)·곽선호(郭善浩)·김치은(金治殷)·변인봉(邊麟鳳)·김태용(金泰鏞)·손봉국(孫鳳國)·변도준(邊道俊) 등 다수가 참석하였다. 원래 조선독립청년단은 1919년 음력 8월경부터 조직되어 황해도 각 군에 징수위원을 두고 인구세(人口稅)와 애국금(愛國金)을 모집해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제공하는 활동을 해왔다. 독립청년단 결성 당일 이들은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부할 것, 독립운동을 방해하는 한국인 경찰·관리·밀정 및 독립운동 자금 제공을 거절하거나 독립운동가를 밀고하는 자를 처단할 것, 한국 내 독립운동의 상황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고할 것,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보내 온 독립운동 선전 인쇄물을 일반인들에게 배포할 것 등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단장 손재흥, 부단장 이정률, 총무 김청풍·김태용, 서기 변인봉·김치은, 교통원(交通員) 등의 임원을 선정하였다. 이때 곽선호·곽익호와 함께 교통원으로 임명되었다. 독립청년단 결성 이전인 1920년 4월경부터 김청풍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공보(公報)』와, 『독립신문』, 『신한청년』 등을 가지고 와 황해도 각지에 배포할 때 함께 활동하였다. 1920년 7월에는 김청풍 등과 함께 『독립신문』 4,000매, 『신한청년』 40부를 몰래 서울에 가지고 가서 일반 대중에게 배포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1920년 8월 6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1년 5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 구류일수 중 200일 본형 산입)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출옥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1930년부터 안창호(安昌鎬)와 서신으로 교류하며 한국 독립운동의 방향을 모색해나갔다. 1931년 초 상하이에 있는 안창호를 찾아가 한국 독립을 위해 통합된 대독립당(大獨立黨)을 조직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를 위해 광둥(廣東)에 있는 중국국민당(中國國民黨) 주요 인사들을 만나 군자금을 지원받겠다는 계획을 세워 안창호와 공유하고, 그 실행을 위해 움직였다. 이해 11월경에는 안창호와 함께 이동녕(李東寧)·조성환(曹成煥)·최동오(崔東旿)를 만나 구체적인 논의를 하였다. 통합 단체의 명칭으로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을 제안하여 결정되었으며, 그 계획안을 작성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 준비를 하였다. 상무위원, 지부 설치, 회원 모집까지 시도한 것으로 보이나 안창호·이동녕 등과 활동 시기 및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로 성사되지는 못하였다. 이후에도 난징(南京) 등지에서 활동을 계속하였다고 하나, 구체적인 행적은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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