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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석

安鍾奭

187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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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안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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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대흥(大興)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대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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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성명회
  • · 공교회
  • · 창의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충청남도 대흥군(大興郡) 이남면(二南面) 가덕리(加德里, 현 예산군 광시면 가덕리)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7년 당시 45세인 것으로 보아 1873년생으로 추정된다. 홍주의병을 비롯하여 충청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의병활동에 가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05년 이후 많은 사람들이 국권회복을 위해 중국과 연해주 등지로로 이주하였는데, 1908년 (음)4월 경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유인석(柳麟錫)·이범윤(李範允)·이상설(李相卨) 등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성명회(聲明會)에 가담하였다. 1910년 (음)8월 17일 경 총재 유인석의 명으로 국내에 들어와 원산(元山)에 있는 일제 관헌의 실정을 정탐하는 활동을 벌였다. 유인석을 비롯한 성명회 주요 간부들은 국내진입을 목표로 한 13도의군의 구성원으로, 일본의 한국 강제합병을 반대하고 결사대를 조직하여 일본인 거류지를 습격하거나 국내 진공 전쟁을 계획하였다. 원산 파견은 이러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1910년 10월 러시아 당국에 의해 성명회 주요 간부들이 체포되면서 해체되자 간도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간도로 이주한 후에는 허룽현(和龍縣) 숭화사(崇化社) 상천평(上天坪)에 거주하였다. 1914년 (음)정월, 북간도 국자가(局子街)[현 옌지시(延吉市)]의 공교회(公敎會)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성명회원으로 활동했던 이범윤의 부하 이성림(李聲林)·김영택(金永澤)·장흥교(張興敬)을 만나 공교회 회원 민배식(閔培植)·한상열(韓相悅) 등과 함께 국권회복 방안을 논의하며 시기를 기다리며 결의를 다졌다. 1915년 (음)8월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동닝현(東寧縣) 고안촌(高安村, 일명 산분구)에서 민배식과 만나 의병을 일으킬 것을 은밀히 계획하고 고안촌의 삼석현(三石峴)에 근거를 두고 러시아에 있는 사람들까지 대상으로 작성한 ‘서고해외동포(誓告海外同胞)라는 격문을 배포하면서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이에 (음)9월에 말 동지 80명, 소총 50정, 권총 3정 및 탄약 7,500발을 준비하는 데 성공하였고, 삼석현의 김종협(金宗協)의 집을 근거로 하여 부근에서 숙사와 식량을 징발하였고 삼석현에서 러시아령 스펜찬에 이르는 사이에 여객 1인당 2원씩을 거두어 러시아 관헌과 충돌 끝에 러시아 관리 1명을 사살하였다. 이때 부하 다수가 사방으로 흩어져 30명만이 근거지로 돌아왔다. 이후 훈춘(琿春)의 황병길(黃炳吉)과 연락하여 일제 관헌을 습격할 계획을 세우고 중국관헌과 교섭 중에 1916년 2월 중국 관헌에 붙잡혀 무산헌병분대에 압송되었다. 1917년 4월 함흥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1919년에는 의병대장 홍범도(洪範道)와 함께 동닝(東寧)의 의병대장으로 활동하였다. 자료의 이후의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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