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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承翼

承翼

1888. 1. 1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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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劉承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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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희천(熙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희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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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천마산대
  • · 독립청년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1888년 1월 15일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북면(北面) 명문리(明文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한자를 달리 한 유승익(劉承益)이다. 평소 일제에 국권을 피탈당한 민족의 불운한 현실에 분노하며 독립의 기회를 엿보았다. 같은 마을에 살면서 자신과 뜻이 같은 임성섭(林成涉)과 친하게 지내면서 함께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치기로 결의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평안북도에서는 최시흥(崔時興)·최지풍(崔志豊)·박응백(朴應伯) 등 수십 명을 중심으로 독립군부대인 천마산대(天摩山隊)가 조직이 되어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평안북도 의주(義州)·귀성(龜城)·삭주(朔州) 3개 군 접경에 있는 천마산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천마산대라 불리어지게 되었다. 천마산대는 적에게서 빼앗은 무기를 가지고 도내 각지를 왕래하며 유격전을 전개하였으며, 일제 관공서를 습격하고 일제 경찰 및 친일파를 처단하였다. 평안북도 희천군 출신의 임성섭·임성률(林成律) 형제는 조준룡(趙俊龍) 등과 함께 천마산대 최시흥의 부하인 최오산(崔午山)과 만난 뒤 천마산대를 지원하기 위하여 희천군 북면을 근거지로 삼아 항일 무장단체인 독립청년단(獨立靑年團) 조직하였다. 1922년 임성섭의 권유로 독립청년단에 가입하여 그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1923년 (음)7월 하순 최오산과 단원들이 내려와 임성률의 자택에서 숙박한 사실을 알게된 일본 경찰들이 임성률을 희천군 북면 경찰관 주재소로 잡아가 그들을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관하여 조사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된 최오산과 단원들은 주재소를 습격하여 순사를 처단하고 임성률을 구출할 계획을 세웠다.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천마산대 대원들에게 적극 협조하였다. 1923년 9월 21일 밤 천마산대 대원 등 16명은 총기를 소지하고 희천군 북면 문명동 소재의 창참(倉站)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였다. 대원들과 함께 청사 2동과 건물 2여 동을 불태우고, 일제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여 적을 처단하였다. 총격전 이후 경찰이 인근 주민들을 조사하여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을 대거 체포함에 따라 주도 인물로 간주되어 붙잡혔다. 1924년 7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옥고를 치르던 중, 1927년 11월 15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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