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신
高濟臣1883. 10. 27 ~ 1943. 1.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복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군자금모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3년 10월 27일 전라북도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청호리(晴湖里)에서 태어났다. 고문경(高文京)·박백파(朴佰波)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10년대 광복회원으로 전남 지역에서 활동하던 한훈(韓焄, 또는 韓禹錫)·유장렬(柳漳烈) 등을 만나 광복회에 동참하였다. 광복회는 1913년 경북 풍기(豐基)에서 채기중(蔡基中)의 주도로 결성된 비밀결사였다. 이 단체에는 한훈·유장렬·유창순(庾昌淳)·강병수(姜炳洙)·김병렬·정만교(鄭萬敎)·정운홍(鄭雲洪)·정진화(鄭鎭華)·황상규(黃尙奎)·이각(李覺) 등이 참여하였다. 의병 출신이 많았으며 무장 항일 투쟁의 기치가 뚜렷하였다. 1915년 대구의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 일부 세력이 합류였고, 이후 전국적 지부망을 갖추고 국내 항일 운동을 이끌어 나갔다. 1917년 1월 한훈·유장렬과 함께 전남 보성군(寶城郡) 벌교리(筏橋里) 친일 부호 서도현(徐道賢)으로부터 당질 서인선(徐仁善)을 볼모로 하여 군자금 1만 4,000원을 받아냈다. 1920년 4월 한훈 등과 함께 김제(金堤)와 전주(全州) 등 전북 일대를 돌며 군자금을 모았다. 1920년 8월 미국 하원의원단이 내한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훈이 그 내한 일자에 조선총독 등 일제 고관을 처단하려는 활동에 참여하자, 임성태(林聲泰) 등과 전북 일대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펼쳐 나갔다. 1921년 12월부터 1923년 초반까지 임성태와 함께 부안(扶安)·김제·정읍(井邑) 일대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을 위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3년 7월경에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부안 등지를 돌며 활발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군자금 모금 활동으로 일본 경찰의 추적을 받았다. 1924년 1월 14일 정읍군 영원면장(永元面長) 김학준(金學準)의 집에 숨어 지내다 부안군 줄포경찰서 경찰대에 체포되어 광주형무소에 재감 중 1924년 8월 28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8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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