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근
吳亨根1888. 8. 5 ~ 1925. 11. 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금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88년 8월 5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부평리(富平里)에서 태어났다. 금마면에서는 부평리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파악한 민영갑은 이재만과 협의 후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논의하여 만세운동 계획을 추진하였다. 4월 1일 가산리 이원교(李元交)의 집에서는 임시 연극 공연장을 설치하여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민영갑·이재만 등은 연극 공연을 기회로 이때 모인 주민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예정대로 4월 1일 당일 연극 공연이 시작되었고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도 관객으로 위장하여 연극을 관람하였다. 이들은 아직 연극이 공연 중이었던 오후 8시경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공감한 수십 명의 주민들이 동참하면서 연극 공연장은 만세시위로 흥분된 분위기였으나, 곧이어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본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이 붙잡혔다. 현재 전하는 자료에 한계로 인해, 참가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苔)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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