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화종
安和鍾1888. 7. 12 ~ 1965. 5.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청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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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88년 7월 12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송라면(松羅面) 대전리(大田里, 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대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22일 영일군 청하면(淸河面) 덕성리(德城里) 장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영일군 청하면 덕성리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은 장로교 기독교회 지도자 윤영복(尹永福)이었다. 신문을 통해 전국의 만세운동 상황을 알게 되자 영일군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윤영복은 3월 18일 친족 형인 예수교 교사 윤영만(尹永滿)과 덕성리 예수교 교회 영수 오용간(吳用干)을 찾아가 만세운동 소식을 알리고 자신의 생각을 전하였다. 윤영복의 이야기를 듣고 윤영만과 함께 뜻을 모으게 되었고, 거사 날짜와 장소는 덕성리 오일장이 열리는 3월 22일에 장터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세 사람은 오용간의 집과 교회에 모여 만세운동을 준비하였고, 윤영복과 오용간은 집에서 만세운동에 쓰일 태극기를 제작하며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리고 같은 교회 신도들을 설득하여 만세운동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이에 이준석(李俊石)·안천종(安千鍾)·안상종(安常鍾)·이준업(李俊業)·윤도치(尹道致)·이윤선(李允先)·김만수(金萬守) 등이 계획에 참여하게 되었다. 3월 22일 거사 당일 만세운동을 준비한 기독교 신자들은 미리 윤영복과 오용간으로부터 태극기를 받고 덕성리 장터에 모였다. 오후 1시 경 윤영복이 먼저 대형 태극기를 흔들고, 이어서 오용간도 작은 태극기를 꺼냈다. 두 사람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장터에 있던 신도들도 품에서 태극기를 꺼내 ‘독립만세’를 외쳤다. 장터에 나왔다가 이들의 만세운동에 동참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군중들은 덕성리 거리로 시위를 확대하기에 이르렀다. 대전리 교회 집사 이준석(李俊石)이 선두가 되어 군중들은 거리로 나와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만세운동 소식에 일제 경찰은 즉시 출동하였고 총칼로 군중들을 위협하여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때 다른 시위 주도인물, 참여자 23명과 함께 붙잡혔다. 이후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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