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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규

安鍾奎

1889. 5. 25 ~ 1946.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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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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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주(楊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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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관련 사건

  • · 백석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3) 1889년 5월 25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백석면(白石面) 연곡리(蓮谷里)에서 태어났다. 양반 출신으로 1919년 당시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 구장(區長)을 역임하고 있었다. 그 해 3월 27일과 28일에 일어난 백석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1일, 손병희(孫秉熙) 등의 민족대표가 「조선독립선언」을 발표하고 이후 전국적인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 취지에 찬동하여 백석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27일 형 안종태(安鍾台)와 함께 마을 사람 약 20~30명을 규합하여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된다”라는 취지의 연설을 한 후 다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만세운동이 끝날 무렵 모인 마을주민들에게 다음 날인 1919년 3월 28일 아침에 다시 만세시위를 일으키자고 설득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아침 안종태·김대현(金大鉉)·이사범(李士範)·조필선(趙弼善) 등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할 군중을 규합한 결과 무려 6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우선 이들은 양주군 백석면 오산리(梧山里) 대들벌에 모여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후 백석면 면사무소를 향해 만세시위 행진을 시작하였다. 백석면사무소에 도착한 후 면사무소 앞에서 시위 군중들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면사무소 앞에서의 시위가 점차 격렬해지자 일제 헌병들이 출동하여 시위 군중을 해산시키고 주도자 10여 명을 체포하였고, 이때 붙잡혀 재판으로 넘겨졌다. 1919년 5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불복하여 상고하였고, 그 해 8월 2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8개월 후인 1920년 4월 28일 사면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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