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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명

安定明

1907 ~ 1919.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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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안정명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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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3.1운동

포상 정보

  • · 애국장(2003)

관련 사건

  • · 철산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3)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와 출신지는 확인할 수 없다.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에 소재한 명흥학교(明興學校)의 학생으로 홀어머니와 단둘이 함께 살다가,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철산군 읍내에서도 만세시위가 발생한 1919년 3월 7일 만세시위 도중 폭력적인 진압을 하던 일본군이 쏜 총을 맞고 13살의 어린 나이에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평안북도 철산군 철산 장터 만세시위는 명흥학교 교사 안태영(安泰英)이 3월 1일 선천군에 갔다가 그곳에서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철산에 돌아와, 명흥학교 교장인 심치규(沈致奎)와 유봉영(劉鳳榮)등에게 만세운동의 경과를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곧 철산에서도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지역의 기독교계와 천도교계, 일반 사회인들 중에서 각각 대표자를 모아 시위를 준비하였다. 4차례가 넘는 회합 끝에 시위는 3월 7일 읍내 장날에 맞추어 동부동 기독교 예배당에서 독립선언서의 낭독식을 갖고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 1919년 3월 7일 정오에 동부동의 예배당에서 미리 계획한대로 종소리가 울리자, 예배당 안에만 기독교, 천도교, 일반 주민을 망라하는 1천여 명의 참여자가 모였다. 이곳에서 김영락(金永洛)의 사회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제창한 뒤, 준비해 온 선언서와 태극기를 모여든 참가자들에게 배부하였다. 그 후 시가 행진이 시작되었고, 거리에 있던 주민들이 함께 만세를 부르며 합류하였다. 장터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이 대거 합류하면서 시위 규모는 크게 불어났다. 시위대의 행진이 계속되었고, 일본 경찰의 지원요청에 의해 철산에 증파되어 있었던 철도원호대(鐵道援護隊)가 시위대의 뒤를 따르며 해산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위대가 우편국 앞을 지날 때쯤 우편국 안에 있던 일본인 직원이 시위를 보며 조롱하여 비웃고 욕설을 하여 소란이 발생하였다. 분노한 시위 군중은 돌을 던지기 시작하였고, 이 충돌을 빌미로 철도원호대가 폭력적인 진압을 시작하였다. 경찰서 앞 골목까지 몰린 시위대를 향해서 일본군이 총을 쏘고, 총검을 휘둘러 5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다른 6명과 함께 현장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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