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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엽

柳昌燁

1893 ~ 1922.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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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유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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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의주(義州)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의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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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서로군정서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9)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93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만주로 건너 간 경위는 자세히 알기 어려우나 1922년 경 서간도 콴뎬현(寬甸縣) 궁자구(宮子溝)에 거주하였으며,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의용대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서간도를 국외독립운동기지로 개척하던 민족운동가들은 자치기관이었던 부민단(扶民團)을 본격적인 독립운동 추진기관인 한족회(韓族會)로 전환시켰다. 한족회는 정무·외무·법무·검찰·학무·재무 등 행정부서를 편성하고, 독립운동을 본격적으로 이끌어 갈 군정부(軍政府)를 별도로 설치했다. 그리고 이주 한인이 거주하는 한인사회 각 지역에 총관(總管), 1가장(家長), 10실장(室長) 등의 지방조직을 만들었다. 그런데 같은 해 4월 11일 상하이(上海)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한족회 지도부는 임시정부 인사들과 협의해 군정부를 군사기관인 서로군정서로 개편하였다. 이 같이 성립된 서로군정서는 독판(督辦) 이상룡(李相龍)의 지휘아래 정무청·군정청·참모부 등의 부서와 의용군을 편성해 적극적인 항일무장활동을 펼쳤다. 이 의용군의 대원이 되어 콴뎬현(寬甸縣)에서 활동했던 것이다. 해로(海路)와 육로(陸路) 모두 통하는 교통 요지로 대도시가 형성되어있는 안둥현(安東縣, 현 단동시)과 접한 콴뎬현은 재만(在滿) 독립군단들이 근거지를 구축하기에는 아주 좋은 지역이었다. 신의주(新義州)를 마주한 국경도시인데다 교통 요지인 안둥현은 일제가 감시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인접한 콴뎬현은 90%가 산간인 험준한 지형을 갖춰 근거지를 은폐하기 쉬운데다 압록강만 넘으면 곧 한국으로 진입해 유격전을 전개할 수 있었다. 때문에 서로군정서를 비롯해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등 거의 같은 시기 활동한 여러 독립군단들이 이곳에 본부 또는 지단 등을 설치하거나 아니면 지방조직인 총관을 설치해 근거지를 확보하였다. 1922년 11월 2일 평안북도 삭주(朔洲)에 주둔한 일제 경찰대 24명이 수색대를 편성해 2명의 한국인 안내원을 앞세워 콴뎬현으로 왔다. 이들은 삼차자(三岔子)를 거쳐 궁자구로 들어와 대한독립단 소속으로 통신업무를 담당한 유후근(柳厚根)을 체포해 현장에서 살해하였다. 같은 마을, 앞집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제 경찰대의 습격을 마찬가지로 받았다.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끌려 나가자 아내가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이에 일제 경찰들은 부부를 향해 총을 발사했고 함께 사망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대는 호자구(蒿子溝)로 옮겨 서로군정서 관남총관소(寬南總管所)까지 파괴하고 물러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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