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학
王京學1888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참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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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2) 평안북도 초산군(楚山郡) 동면(東面) 구룡리(九龍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9년 당시 42세인 것으로 보아 1888년생으로 추정된다. 1925년 만주로 건너가 펑톈성(奉天省) 중화보(中和堡) 로황구(老荒溝) 일대에서 거주하였다. 만주에서는 참의부(參議府)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남만 지역에서 활동하던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는 지도자들의 이념 대립 및 운동노선의 차이로 분열의 길을 걷게 되었다. 통의부 의용군 1·2·3·5중대는 통의부를 탈퇴한 뒤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로 편입되면서 1924년 5월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참의부 산하에는 5개의 중대, 독립소대, 훈련대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관할 내 한인들의 치안을 담당하고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국내로 들어가 지회를 설치하여 군자금과 단원 모집, 일제 주요기관 습격 등을 주요 임무로 삼았다. 1926년에 참의부에 가담하여 제2중대에서 활동하였다. 1926년 5월부터 연말까지 대원 박시상(朴始相)·이영만(李永萬) 등과 함께 국내로 들어가 고향인 평북 초산군과 위원군(渭原郡)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27년 초에도 국내로 진입하여 활동하다가, 그 해 4월 25일 밤 동지들과 함께 각각 휴대한 권총으로 일제의 밀정을 처단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이어가던 도중 행적이 일제 경찰에게 탐지되면서 같은 달 초산경찰서에 붙잡혔다. 오랜 조사 끝에 1929년 6월 2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살인죄 등으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이후의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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