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길
安廷吉미상 ~ 1925. 3. 1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참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구마링 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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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평안남도 평양(平壤)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는 확인할 수 없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안정길(安貞吉·安鼎吉)을 사용하였다. 1924년 초 중국 길림성(吉林省) 통화현(通化縣)에서 결성된 참의부(參議府)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22년 8월 랴오닝성(遼寧省) 환런현(桓仁縣)에서 통합 독립군조직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결성되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공화주의(共和主義)와 복벽주의(復辟主義) 계열 간에 이념적 대립으로 불화가 발생하여 복벽주의 계열의 전덕원(全德元) 등이 의군부(義軍府)를 조직하고 통의부를 이탈하는 등 혼란이 야기되었다. 양측의 대립이 격화되자 통의부 의용군(義勇軍) 제1중대장 백광운(白狂雲)을 비롯하여 김선풍(金旋風)·최지풍(崔志豊) 등은 1923년 말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하고 남만주 지역에서 임시정부를 구심점으로 각 독립군단이 대동단결한 새로운 독립군 부대의 창설에 합의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결정에 따라 통의부 의용군 가운데 제1·2·3중대(中隊)와 유격대 및 독립소대 등이 임시정부 직할의 만주 지역 독립군 부대인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部)를 결성하였다. 초기 주요 간부로는 참의장 겸 제1중대장 백광운, 제2중대장 최석순(崔碩淳), 제3중대장 최지풍(崔志豊), 제4중대장 김창빈(金昌彬), 제5중대장 김창대(金蒼大), 훈련대장 박응백(朴應伯) 등이었으며, 이때 제1중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1924년 2월 2일 의용군 제1중대 참사 이화주(李化周)가 7명의 대원을 거느리고 평북 강계(江界) 지역에 진출하여 작전을 전개하자 이에 참가하였다. 그런데 당시 이곳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던 일제 경찰은 국경 지역 곳곳에 소위 자위단(自衛團)을 설치하고 중국인과 한인들의 통행을 철저하게 감시하는 등 경계를 강화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강계 이판리(吏判里)에 거주하는 일제 밀정 이길상(李吉祥)이 독립군 부대의 상황을 경찰서에 밀고하여 대원들은 일제 경찰 40여 명에게 포위당하게 되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서 독립군 부대는 숲을 밤새도록 행군하여 적의 포위선을 돌파하고 문옥면(文玉面) 어면동(漁面洞)에 이르렀다. 이때 길을 지키고 있던 일제 경찰의 척후(斥候)가 독립군 선발대였던 양봉제(梁鳳濟)가 그를 발견하고 “누구냐!”고 물었다. 이에 담대하게 “나는 순사다”라고 대답하고 태연한 태도로 일제 경찰의 2·3미터까지 접근한 후 다시 “나는 독립군이다!”라고 선명(宣明)하며 권총을 발사하여 일제 경찰을 1명을 사살하였다. 그리고 이어 뒤따라온 독립군 후군 분대도 총을 쏘면서 현장에서는 교전이 시작되었다. 이 전투에서 일제 경찰 2명이 사망하였고 독립군 부대는 다른 손실 없이 부대로 돌아왔다. 또한 1924년 5월에는 남만주의 독립군단들이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선언서를 발표하자 이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국내언론에서는 남만주의 독립군단들도 북만주의 독립군단들과 마찬가지로 “임시정부를 견고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본분이요 우리 군인은 임시정부의 깃발 아래 모여 대업을 완성하기로 결심하고 절대 개인의 야심으로나 또는 국부사회(局部社會)의 편견으로 활동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발표했다고 보도 하였다. 이 선언서에 백광운·김선풍·한권웅(韓權雄) 등 50여 명의 독립군과 함께 서명하였다. 또한 8월 25일에는 참의부 제1중대 제2소대 제1분대장(分隊長)으로서 6명의 대원들을 거느리고 강계군으로 들어와 일제의 연광사무소(鉛鑛事務所)와 목재창(木材廠)을 소각하였으며, 일제 경찰 2명을 처단하는 전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이 전투에서 대원 김선호(金善鎬)가 전사하였다. 이후 1925년 3월 중순 참의장 겸 제2중대장이었던 최석순이 60명의 대원들과 함께 지안현(集安縣)의 구마링(古馬嶺) 산중에서 개최한 작전회의에 참가하였다. 그런데 이 회의는 초산경찰서 소속 순사부장 고피득(高彼得)이 이죽파(李竹坡) 등 밀정들의 보고로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고 일제 경찰은 회의장을 급습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초산경찰서에서는 연담주재소 경부보 미즈노(水野宅三郎)에게 경찰대 65명과 초산 주둔 수비대 120명을 거느리고 구마링을 포위하도록 했는데, 미즈노는 고피득과 밀정들을 앞세우고 초산을 출발하여 압록강에서 60여 리 떨어진 구마링에 도착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은 부대를 6개 분대(分隊)로 나눈 다음, 이튿날 새벽 회의 장소를 급습하였다. 일제 경찰의 공격을 받은 참의부 대원들은 즉각 전투태세를 갖추고 응전했으나 참의장 최석순 이하 40명이 교전 중 전사했으며, 10여 명의 대원들만이 간신히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교전 중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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