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희
姜學熙1898. 7. 9 ~ 1962. 8.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대한독립단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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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1898년 7월 9일 경기 광주군(廣州郡) 중부면(中部面) 광지원리(光池院里)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였다. 김교상(金敎爽)·이재인(李載仁) 등은 오래전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 파견원이라는 한진교(韓震敎)와 연계하여 항일 독립을 위한 문서를 인쇄·배포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이 항일 문서 작성, 민족정신 고취, 동지 규합,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조직하자, 1920년 음력 4월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였다. 이후 음력 4월부터 9월 사이에 광주군 내 이재인 집과 김교상 집 등에서 김교상·한진교·이섬(李暹)·홍영전(洪永傳) 등과 만나 항일 문서 제작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먼저 이 문서들을 서울 시내에 배포하여 상점들을 폐쇄하고 독립 시위운동을 전개한 후, 임시정부의 암살단 특파원 김상옥(金相玉) 등과 연계하여 대대적으로 운동을 펼치기로 하고 준비에 착수하였다. 또한, 연통제(聯通制)를 시행하여 우선 각 군(郡)에 지부를 설치한 뒤 서울에 중앙본부를 조직하여 이를 통일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1920년 음력 4~9월 사이에 대한독립단 중앙본부(中央本部)의 이름 아래 “대한 독립운동을 위해 생명, 재산을 다하여 대한독립단 중앙부의 명(命)에 복종하기로 서약한다”라는 내용의 「서약문」 약 1,000매를 비롯하여, 「경고문」 약 200매, 「암살단 취의서(趣意書)」 약 3,000매, 「대한독립단 지방군(地方郡) 시행규령」 80권, 「대한독립단 경무국 시행규령」 약 340권, 「선포문」 약 1,000매, 「대한독립단 취지서」 등 다수의 항일 문서를 제작 인쇄하여 숨겨두었다. 특히 「대한독립단 경무국 시행규령」의 경우, (음)9월 25~26일경 안교동(安敎童) 집에서 김교상·한진교·이재인 등과 함께 직접 인쇄하였다. 그러던 중 1920년 11월경 이들의 활동을 눈치챈 종로경찰서 형사들에게 김교상·이재인과 함께 붙잡혀 11월 15일 경찰범처벌규칙 위반으로 구류 25일에 처해졌다. 그런데 이후 한진교 등이 붙잡히면서 이들과 함께 12월 24일 검찰로 송치되었다. 1921년 5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미결구류 통산 120일 산입)형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고, 그해 7월 29일 형 집행 만기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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