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식
安鍾植1913. 10. 3 ~ 1945. 4. 2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죽마계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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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4) 1913년 10월 3일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 북내정(北內町, 현 대구광역시 중구 북내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안종식(安鐘植)을 사용하였다. 수창(壽昌)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 4월 대구에 있는 계성(啓聖)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병으로 인해 1931년 3월 자퇴하고 1932년 4월 서울에 있는 중동학교(中東學校)에 입학하여 1935년 졸업하였다. 졸업 후에는 가업인 농업에 종사하다가 1937년 3월 일본 도쿄(東京)로 유학을 갔다. 4월에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 상과에 입학하여 1940년 3월 졸업하였다. 1940년 2월 니혼대학 동기생인 안병익(安秉翊)·이창덕(李昌德), 메이지대학의 김사복(金思宓) 등과 함께 독립운동단체를 결성하기로 결의하였다. 같은 해 3월 9일 도쿄에 있는 김사복의 집에서 독립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지속적인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항일 결사단체인 죽마계(竹馬契)를 조직하였다. 한인 유학생을 중심으로 구성된 죽마계는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표면적으로는 한국 향촌 전래의 ‘계(契)’라는 모임 형태를 빌려왔다. 또한 문맹퇴치 활동과 출판 사업을 통해 민족의 계몽을 꾀하고, 민족의식을 고양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또한 계 조직을 활용해 경제력 향상을 도모함으로써 독립 기반을 조성하고자 하였다. 김덕순(金德順)을 계장(契長)으로 추대하고, 서울과 도쿄에 각각 지부를 설치하고, 본부위원에 안병익, 지부위원에 이해룡·이봉하·이창덕을 선임하였다. 1940년 7월 15일 서울 정릉(貞陵) 약사사(藥師寺)에서 안병익·김사복·이창덕·이해룡·김덕순 등과 모여 현 시국 상황에 대한 개탄과 일제의 식민통치를 비판하고 창씨개명을 하지 않을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7월 18일에는 서울 청량리(淸凉里) 청량사(淸凉寺)에서 이들과 함께 죽마계 제1회 정기총회를 개최하였다. 이후 1941년 4월 19일에는 청량사에서 죽마계 임시총회를 개최하여 한글 신문의 강제 폐간에 반대하는 항거를 하기로 결의하였다. 그 후 죽마계는 조직을 강화하기 위해 연구부와 사무부를 두고 각각 연구 할동과 활동 자금 조달을 맡게 하였다. 이때 서울지부 위원이자 사업부 부원으로 선임되어 자금 마련에 힘쓸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을 지속하던 중 1941년 6월 죽마계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계원 14명이 경시청에 체포되었으며 같은 해 8월 10일에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43년 3월 30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도쿄 고이시카와형무소(小石川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4월 25일 옥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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