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원
吳熙源1873. 3. 2 ~ 1935. 8.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민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05인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3년 3월 2일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 참면(站面) 이응동(二鷹洞)에서 태어났다. 호는 석포(石圃)이다. 1899년 중추원의관, 1900년 용천(龍川)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906년 5월 한일은행(韓一銀行)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계몽운동 단체인 서우학회·서북학회·태극학회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5월 철산군 국채보상지성회(國債報償志成會)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07년 4월에 창립된 비밀결사 신민회에 가입한 뒤 자신이 살던 평북지회에서 활동하였다. 일제가 1910년 12월 안명근(安明根)의 안악사건을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암살미수 사건으로 조작하였는데, 이에 연루되어 붙잡혔다. 안악사건은 일제 경찰이 황해도 신천(信川) 일대에서 만주 지역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자금을 모금하던 안명근을 체포하면서 비롯되었다. 일제는 이를 기회로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고자 당시 데라우치 총독이 압록강 철교 준공 축하식 참석차 신의주(新義州)를 향해 출발하는 날에 데라우치를 총살하려는 음모가 있었다고 사건을 꾸몄다. 일제 경찰은 이를 구실로 신민회(新民會) 회원과 평안도 일대의 기독교 신자 등을 잡아들일 때인 1911년 9월 양기탁(梁起鐸)·이동녕(李東寧)·이동휘(李東輝)·윤치호(尹致昊)·전덕기(全德基) 등과 함께 붙잡혔다. 그 뒤 104명과 더불어 기소되어 1912년 9월 28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징역 7년을 받았지만 항소하여, 1913년 3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재차 상고하여 1913년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풀려날 때까지 2년 동안 옥고를 겪었다. 1923년 11월 이승훈(李昇薰)이 설립한 오산학교(五山學校)가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자 재단법인을 설립하는데 참여하였고, 간도의 대성학교에 50원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1925년 9월 협성학교(協成學校) 교주로서 재정난에 빠진 학교를 되살리는데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공로로 1927년 6월 동아일보가 주최한 제3회 민간교육공로자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폐암으로 수개월 동안 요양하던 중 1935년 8월 1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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