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900. 4. 11 ~ 1941. 5. 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직산금광회사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1919년 천안군 입장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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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2) 1900년 4월 11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입장면(笠場面) 하장리(下場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천안군 입장면 기로리(耆老里)에 거주하면서 직산금광회사(稷山金鑛會社) 광부로 일하고 있었다. 3월 28일 천안군 입장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0일 입장면 양대(良垈)시장에서 미국인 선교사 윌리엄스(C. Williams)가 설립한 기독교계 사립여학교인 광명학교(光明學校) 학생들의 만세시위가 있었다. 이후 3월 25일 직산금광회사 동료 박창신(朴昌信)·한근수(韓根守)와 함께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3월 27일 입장면 기로리(耆老里) 박창신의 집에서 여러 장의 태극기를 제작하며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동료 백학서(白學西)를 가담시키는 한편, 다음날 업무 교대 시간을 이용해 갱부들을 동참시켜 입장시장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3월 28일 오전 6시 30분경 교대 시간에 갱부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고, 약 200명의 광부들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광부로 결성된 시위대는 갱 입구에서 만세를 부르기 시작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입장시장을 향해 행진하던 중 양대리에서 일제 헌병대의 저지로 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는 헌병대에 붙잡혀 있는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였고, 주재소를 습격해 헌병의 무기를 탈취하고 통신선을 절단하기도 하였다.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지면서 일제 헌병의 무차별적인 발포로 2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고 6명이 부상당하였다. 이때 8명이 체포되었는데,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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