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국
安用國1874 ~ 1908. 11. 2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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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5) 자료에 따르면 1908년 당시 나이가 45세로 1874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함경북도 길주군(吉州郡)의 장동(獐洞)에 거주하였다. 전해진 자료의 한계로 자세한 집안 내력과 성장 과정 등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일제가 광무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 해산시키자 서울의 시위대(侍衛隊)와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의 무장 봉기를 시작으로 전국적인 정미의병(丁未義兵)의 항쟁이 전개되었다. 일제가 1907년 9월 6일 총포와 화기의 압수를 강제하자 북변(北邊)의 산포수(山砲手)들이 봉기하면서, 중부 지역에서 시작된 정미의병 항쟁은 함경과 평안 지역에까지 이르렀다. 처음 의병 활동에 나선 시기나 소속 의병부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으나 1908년에 함경남도(咸鏡南道)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함경남도 파견 제3순사대(咸鏡南道派遣第三巡査隊)에 붙잡혀서 같은 해 11월 2일 정당한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북청군(北靑郡) 북청문(北靑門) 부근에서 일제에 의해 사망하였다. 탈주를 기도하였다는 등의 거짓 구실을 꾸며 순사대가 즉결 처분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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