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옥희
安玉熙1863. 9. 16 ~ 1939. 3. 1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이천수창의소(利川首倡義所)
- · 김하락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2) 1863년 9월 16일 경기도 광주군(廣州郡)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순흥 안씨 서파공파(西坡公派) 28대손이다. 전해진 자료의 한계로 자세한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의병 활동에 참여하였다. 1895년 12월 단발령이 내려지자 1896년 1월 김하락(金河洛)·조성학(趙性學)·김태원((金泰元) 또는 (集義堂))·신용희(申龍熙)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 구연영(具然英)과 만남으로써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들이 바로 경기 의병의 연합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이천수창의소(利川首倡義所)의 핵심 구성원들이었다. 김하락의 종사관(從事官)을 지내면서 남한산성 공방전에 참여하였다. 이들의 명분은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 일본을 등에 업고 정권을 장악한 친일 개화파들을 몰아내고 왕을 지키겠다는 복고적인 것이었다. 2,000여 명이 되는 의병 부대가 1896년 2월 남한산성에 결집했고, 김하락 의병장의 총지휘 아래 관군에 대항하였다. 처음에는 의병들이 견고한 성벽과 유리한 지형을 활용하여 지켰으므로 관군은 성에 접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였다. 또 의병들은 소규모 급습 작전을 성공시킴으로써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전투가 길어지면서 결국 성내 내응을 유도한 관군의 작전이 먹혀들었고 의병들은 진압당하였다. 남한산성 전투가 끝난 후, 김하락과 함께 경북 지역으로 이동하였고 현지의 의병부대와 연합하였다. 김하락의 의병부대는 1896년 6월 경북 영덕(盈德)을 근거지로 삼아 병사들을 모았다. 하지만 일본군으로부터 무기를 받은 관군이 경북까지 내려왔고 김하락 의병부대는 이에 응전하였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김하락은 부상당했고, 열세에 몰린 의병장 김하락은 1896년 7월 투신하여 사망하였다. 김하락의 사망 이후 의병부대는 해산하였고, 이때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후 구연영과 더불어 구국회(救國會)를 조직하는 등 애국계몽운동 노선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한편 『동아일보』 1935년 5월 26일자에 따르면, 광주군 도척면(都尺面) 면협의원(面協議員)으로 당선된 것이 확인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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