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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손

金道孫

1893. 8. 11 ~ 1922.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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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도손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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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관련 사건

  • · 금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1) 1893년 8월 11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송암리(松岩里)에서 출생하였다. 금마면의 만세 시위는 4월 1일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시위는 가산리(佳山里)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을 중심으로 계획된 것이다. 전국적인 독립 만세 운동의 정세를 파악한 민영갑은 이에 호응하여 금마면에서도 만세 시위를 일으킬 것을 고민하고, 우선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이재만과 협의하였다. 이후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도 참여하여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4월 1일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 공연장에서 열리는 연극 공연을 계기로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4월 1일 이원교의 집에서 연극이 공연되었다. 관람자로 참석한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은 오후 8시경 ‘독립 만세’를 선창하면서 연극 관람을 위해 나온 주민들에게 만세 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수십 명의 주민이 호응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연극 공연 관람은 순식간에 만세 시위로 전환되었다. 이날의 만세 시위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당일 해산되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들은 다음 날인 4월 2일 홍성시장에 나가 또 다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고, 이에 시장에 나온 군중이 참여하면서 전날의 연극 공연장 시위보다 규모가 확대되었다. 이날의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에 구금되었다. 홍성경찰서는 만세 시위 참여자들에 대해 이른바 보안법을 적용하고, 가담 정도에 따라 태형(笞刑) 30도(度), 60도, 90도로 구분하여 즉결처분하였다. 만세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4월 19일 홍성경찰서의 즉결처분에서 90도의 태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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