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선국
安善國1908. 1. 4 ~ 1957. 8.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 · 정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08년 1월 4일 평안북도 창성군(昌城郡) 전창면(田倉面) 삼평동(三坪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안기선(安基善)·김대벽(金大壁)·김주선(金周善) 등을 사용하였다. 1923년 16세의 어린 나이였지만 독립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압록강을 넘어 만주로 갔다. 그리고 남만주(南滿洲)의 통합 독립운동 단체였던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가입하여 군사훈련을 받았다. 통의부는 ‘경신참변(庚申慘變)(또는 간도참변[(間島慘變)])’에 의해 파괴된 이주 한인사회와 독립군기지를 재건하고 보다 효율적인 독립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남만의 독립운동 단체들이 통합해 성립된 단체였다. 일제는 서북간도에 근거지를 둔 독립군단(獨立軍團) 소속 독립군들의 국내진입 유격전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에 1920년 10월 약 2만 명의 일본군을 서북간도로 침입시켜 3천 명이 넘는 한인을 살해하고 독립군 근거지와 이주 한인사회를 철저하게 파괴하였다. 이 같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통의부였다. 군사훈련을 마치고 통의부 의용대 소속의 독립군이 되었다. 곧 유격대의 일원이 되어 1924년 1월 3일 국내진입전에 참여하였다. 압록강을 넘어 평안북도 지역으로 진입하여 창성과 벽동군(碧潼郡) 지역 친일 부호의 집을 기습 공격하였다. 60여 호에 이르는 부호의 집을 공략하여 3천 7백 원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제 경찰대와 만나 수차례의 총격전을 벌였지만 모두 물리치고 작전을 수행하였다. 마지막 작전을 수행하고 귀대하는 길에는 유격대보다 많은 수의 벽동경찰대와 교전을 벌였으나 이도 이겨내고 전 대원 무사히 본부로 돌아왔다. 통의부는 남만주의 통합 독립운동 단체로 성립되어 한동안 이주 한인의 생계를 위한 자치활동과 항일무장활동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1923년 초 구성원 간에 이념적 갈등이 생겨 복벽주의계 인사들이 의군부(義軍府)라는 단체를 만들어 분리되었다. 그리고 1924년 초에는 채찬(蔡燦)·김원상(金元常) 등이 항일무장투쟁 우선주의를 주장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군사기관임을 선언하며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部)를 성립시켜 분리되었다. 이에 통의부의 지휘부와 한국 민족운동 지도자들은 전만주 독립운동계의 통일을 위한 전만통일회(全滿統一會)를 구성해 다시 통합운동에 나섰다. 그 결과 통의부를 비롯하여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광정단(光正團)·의성단(義成團)·잡륜자치회(卡倫自治會)·노동친목회(勞動親睦會)·고본계(固本契)·길림주민회(吉林住民會) 등 8개 단체가 통합하여 1924년 11월 24일 정의부(正義府)를 성립시켰다. 정의부는 하얼빈(哈爾濱)–액목(額穆)-북간도로 선을 이어 그 이남 남만주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관할하여 자치활동을 펼치는 한편 의용군을 조직하여 항일활동을 펼쳤다. 정의부가 성립되자 의용군 제6중대에 소속되었다. 1926년 9월 1일 중대장 안홍(安鴻)의 명에 의해 구성된 유격대의 일원이 되어 퉁화현(通化縣) 쾌대무자(快大茂子)에 거주하는 밀정 신한철(申漢哲)과 신영선(申永宣)을 처단하기 위해 출동하였다. 유격대의 지휘관은 제2소대장 김창림(金昌林)이었고, 5명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신한철의 집에 도착했으나 신한철은 순간적으로 피하고 가족들만 남았다. 가족들을 인질로 신한철을 불러들이려 했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신한철 이외 다른 밀정들에게도 경고하는 의미에서 가족들을 처단하였다. 계속하여 신영선의 집을 기습해 들어갔으나 신영선도 도주해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 사건으로 일제가 중국측을 압박하자, 중국경찰대의 수색에 의해 지휘관 김창림과 동지 서상진(徐尙眞)·김용호(金龍浩)·심영준(沈永俊) 등이 체포되고, 혼자만 간신히 추격을 피해 본부로 귀대하였다. 붙잡힌 동지들은 일제의 통화영사관 경찰대에 넘겨졌다. 정의부에는 중앙조직 이외에 각 한인사회를 이끌 총관(總管)·지방(地方)·백가장(百家長)·구(區)·십가장(十家長)등의 지방조직과 모험대(冒險隊)·암살대(暗殺隊)·모연대(募捐隊)·보안대(保安隊) 등의 지역 군사조직이 있었다. 이 중 모험·암살·모연대는 중앙의 의용군에서 특별한 목적으로 출동시킨 파견대였지만, 보안대는 한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조직한 지역대였다. 1928년 무렵 지역대의 구성원이 되어 류허현(柳河縣) 제6구역에서 활동하다 일제 영사관 경찰대에 붙잡혔다. 제1심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강도죄, 살인죄, 공갈죄 등으로 사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1929년 9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5년을 받았다. 그 후 옥중에서 다시 감형되어 11년 3개월의 옥고를 겪고 출옥하였다. 풀려난 후에도 ‘요시찰인’으로 일제의 감시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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