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석
安秉錫미상 ~ 1921. 1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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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 출신지, 만주로 이주한 시기 등은 확인할 수 없다. 만주 지역에서 청년단원으로 활동하던 중 희생되었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이후 만주 지역에도 항일운동 단체의 독립운동이 활발해졌다. 더불어 1920년 6월 봉오동전투에서 독립군이 크게 승리하자, 일본군은 1920년 8월 이른바 「간도지역불령선인초토계획」을 작성하고, 일본 내각은 1920년 10월 7일 북간도에 군대를 파견할 것을 결정하였으며, 일본 육군은 조선주둔일본군 사령관 오바 지로(大庭二郞)에게 북간도 지역의 ‘불령선인 및 마적’을 초토화시킬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1920년 10월부터 일본군의 북간도 지역 ‘토벌’이 시작되었는데, 특히 10월 14일부터 11월 20일까지 감행된 제1기 토벌 때, 일본군은 독립군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비롯한 북간도 지역의 한인들을 대량으로 학살했는데, 이를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 한다. 더욱이 10월 21일부터 26일에 걸쳐, 김좌진(金佐鎭) 등이 지휘한 북로군정서군, 홍범도(洪範圖)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등이 연합한 만주 독립군 부대에 일본군이 크게 패하는 청산리전투가 일어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의 학살은 더욱 잔혹해졌다. 일본군에 의한 북간도 지역의 대대적인 토벌로 거점을 잃은 항일 무장 독립군은, 1921년 들어 만주·소련의 국경을 넘어 소련으로 향하거나, 남만주에 남아 조직을 재편하여 이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등으로 발전하였고, 일부는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내와 만주 지역에서 항일운동을 위한 청년단의 일원으로 잔류하였다. 그러던 중 1921년 1월 출장차 들른 평북 의주군(義州郡) 비현면(秕峴面)에서 다른 청년단원 7명과 함께 일제에 의해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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