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덕원

金德元

1859. 12. 8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덕원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남 동래(東萊)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동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4)

관련 사건

  • · 구포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4) 1859년 12월 8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구포면(龜浦面) 구포리(龜浦里, 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서 태어났다. 3·1운동 당시 61세로 구포에서 식기상을 경영하였다. 1919년 3월 중순 구포면에서는 당시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학생이던 양봉근(楊奉根)이 내려와서 면서기 임봉래(林鳳來)를 만나 독립선언서를 전하면서 본격적으로 만세 시위 계획이 논의되었다. 임봉래·유기호(柳基護)·윤경(尹涇)·김윤길(金潤吉)·김옥겸(金玉兼)·허정(許楨)·김용이(金用伊) 등 구포 지역 청년들은 구포면 구포리의 박영초(朴永初)·이수연(李守蓮) 집에 모여 3월 29일 구포장날에 만세 운동을 펼치기로 하고, 밤을 새워가면서 독립선언서와 크고 작은 태극기를 수백 매씩 만들었다. 거사 당일인 3월 29일 구포시장에서 주동인물들은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배포하고 장꾼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고, 1,000여 명의 군중이 호응하여 독립 만세를 외쳤다. 시위 도중에 일부 주동 인물들이 구포면사무소로 가서 윤영태(尹永台) 면장에게 ‘한국인인데도 왜 시위 운동에 참여하지 않느냐’라고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도록 추궁하다 출동한 경찰에 붙잡혀 구포주재소에 구금되었다. 12명의 시위 주동 인물이 체포되어 구금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임봉래·윤정은(尹正殷)·변봉엽(邊奉燁)·허정 등을 따라 1,2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구금된 동지들을 석방하라고 외치면서 구포주재소로 돌진해갔다. 주먹과 곤봉으로 유리창과 의자를 부수고 구금된 인사들을 구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경찰과 헌병대의 무자비한 발포로 시위대는 해산당하였다. 이 과정에서 체포되었다. 1919년 7월 1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