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동
禹成東1861. 1. 12 ~ 1920. 9.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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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1861년 1월 12일 경상북도 달성군(達城郡) 월배면(月背面) 상인리(上仁里, 현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의 우씨(禹氏) 양반가문에서 아버지 우해익(禹海益)과 어머니 밀양(密陽) 박씨(朴氏)의 사이에서 1남 3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단양(丹陽)이며, 자는 대건(大建)이고 호는 취재(翠齋)이다. 영남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고종 대에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제수되었던 서찬규(徐贊奎)의 문하에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래 독립운동에 참여할 기회를 기다리며 문중의 재실인 열락당(悅樂堂)에 강습소를 개설하여 후학 양성에 노력하였다. 1919년 3월 유림들이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한 「독립청원서」, 세칭 「파리장서(巴里長書)」에 유림의 1차 대표 137명 중 한사람으로 서명하였다. 1919년 3월 1일 이래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는데, 당시 종교계 인사들로 구성된 민족대표 33인의 명의로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국내외에 천명한 「독립선언문」에 유교계의 인사는 한사람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는 유림에서는 상당한 충격이자, 매우 큰 수치였다. 이에 유림은 1919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전후 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하여 한국의 독립의지를 직접 전달하기로 결의하고, 총의를 모아 「독립청원서」를 작성하였다. 이와 같은 독립청원운동은 김복한(金福漢)을 중심으로 한 호서유림과 곽종석(郭鍾錫)을 중심으로 한 영남유림이 주도하였다. 곽종석은 영남지역에서 스승인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학맥을 중심으로 문하의 제자들을 영남 지역 곳곳으로 파견하여 독립청원운동에 유림들을 참여를 독려하였다. 3월 1일 이래 전국적인 만세운동의 상황을 파악하며 정세의 변화를 살피던 중, 곽종석으로부터 유림의 독립청원운동에 대한 내용을 전달받았다. 이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여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조석하(曺錫河)·권상문(權相文)·우경동(禹涇東)·우찬기(禹瓚基)·우승기(禹升基)·우하교(禹夏敎) 등과 함께 유림의 1차 대표 137명 중 한사람으로 「독립청원서」, 즉 「파리장서」에 서명하였다. 그런데 「파리장서」에 서명한 경북 상주(尙州)의 송회근(宋晦根)이 지역의 만세운동을 주도하던 중 4월 12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그에 대한 일제 경찰의 조사과정에서 유림의 독립청원사건이 발각되어 유림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가 전개되어 달성 지역에서 「파리장서」에 함께 서명한 인사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일제는 사회적 영향력이 큰 유림이 연루된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 파장을 우려하여 최대한 이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려 하였다. 그 결과 이른바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예심에 회부되었으나, 1919년 8월 9일 대구지검에서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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