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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수

金達洙

1888. 11. 27 ~ 1924.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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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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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동래(東萊)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동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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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구포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88년 11월 27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구포면(龜浦面) 구포리(龜浦里, 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달수(金達銖·金達守)이다. 3·1운동이 일어날 당시 32세로 구포에서 미곡상을 경영하였다. 1919년 3월 중순 구포 사람으로 당시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학생이던 양봉근(楊奉根)이 내려와서 구포면서기 임봉래(林鳳來)를 만나 서울과 평양(平壤)의 만세 시위 소식을 전하면서 구포의 거사 계획이 본격화되었다. 임봉래(林鳳來)·유기호(柳基護)·윤경(尹涇) 등이 주축이 되어 구포면 구포리의 박영초(朴永初)·이수련(李守蓮) 집에 모여 구포 장날인 3월 29일 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교대로 밤을 새워가면서 거사에 필요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등을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9일 주동 청년들이 장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며 독립 만세를 외치자 장꾼들도 이에 가세하여 시위를 벌였다.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박덕홍과 안화중(安華重)은 구포시장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등을 몰래 나누어주는 한편, 시장의 폐점을 호소하였다. 이날 만세 시위에 찬동하여 장꾼 1,000여 명과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고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출동한 경찰이 주동자 12명을 붙잡아 가자, 임봉래·윤정은(尹正殷) 등을 비롯한 젊은 청년과 함께 붙잡힌 인사들을 구하려고 시위대를 이끌고 구포주재소로 쳐들어갔다. 주먹과 곤봉으로 주재소 유리창을 파괴하고 투석으로 주재소 판벽 여러 개를 부수면서 구금된 인사들을 구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경찰의 무자비한 총격에 많은 사람이 부상당하고 붙잡혔을 때 함께 체포되었다. 1919년 7월 1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0년 4월 28일 석방되었지만, 고문과 옥고의 여독으로 고생하다가 1924년 12월 3일 별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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