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훈
安承勳1900. 11. 26 ~ 1975. 7.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횡성군 횡성읍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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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0년 11월 26일 강원도 횡성군(橫城郡) 안흥면(安興面) 상안리(上安里)에서 태어났다.이명으로 안경춘(安敬春)을 사용하였으며, 천도교인(天道敎人)이다. 1919년 3월 27일 횡성군 읍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교주(敎主) 손병희(孫秉熙)가 천도교 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천도교인들 사이에 항일독립운동의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횡성군에서도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의 움직임이 일어났고, 천도교인의 한사람으로 동참하였다. 3월 10일, 영영포리(永永浦里)에 사는 천도교 봉훈(奉訓) 신재근(申在根)의 집에 대교구장(大敎區長) 최종하(崔宗河)와 정곡면(井谷面) 상안흥리(上安興里)(현 안흥면 상안흥리)에 사는 천도교인 장도훈(張道勳)이 만나 만세운동을 논의하였다. 이들은 만세운동의 계획을 세우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구매를 위하여 신재근은 3원을 내어놓았으며, 장도훈이 서울에서 이를 구매하였다. 3월 12일, 장도훈이 대형 태극기 1매와 창호지로 만든 작은 태극기 20매, 독립선언서 40매를 구매하여 돌아오자 이들은 다시 모였다. 그날 저녁, 신재근의 집에 다시 모인 주도자들은 3월 27일, 횡성읍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고, 독립선언서 배부를 위하여 뜻을 함께할 천도교인들을 규합하였다. 이때, 신재근 등으로부터 만세시위 계획을 듣고, 독립선언서 배부에 동참할 것을 권유받아 흔쾌히 동참하였다. 김인경과 함께 비밀리에 정곡면(井谷面)·갑천면(甲川面)·둔내면(屯內面)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한 후, 횡성읍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날 거사일을 기다렸다. 거사 당일인 3월 27일 아침, 태극기를 숨기고 횡성읍 장터로 향하였다. 장터에는 만세운동 주도자와 만세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천도교인들, 장꾼들로 붐볐다. 다른 주도자들과 같이 먼저 시장 상점을 돌며 상인들에게 만세시위 계획을 알리고 철시를 요청하자, 상인들도 만세운동에 호응하며 철시하였다. 정오 무렵, 장터에 모인 300여 명의 군중에게 태극기를 배포하기 시작하였고, 곧이어 천도교도인 윤태환(尹泰煥)이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군중 앞으로 나왔다. 그 뒤를 신재근·장도훈 등과 따랐고, 윤태환이 태극기를 높이 들며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자,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런데, 갑자기 원주에서 온 일본군 기마부대가 나타나 군중을 해산시켰고, 다른 주도자 등 11명과 함께 현장에서 붙잡혔고, 태극기도 모두 압수당하였다. 만세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도 전에 시위가 끝나면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 만세운동은 4월 1일 횡성읍 만세운동으로 이어졌고, 이후 횡성군의 여러 만세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19년 5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 해 7월 1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징역 10월이 확정으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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