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국
安承國1869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덕천군 덕천읍 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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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평안남도 덕천군(德川郡) 성양면(成陽面) 금성리(金城里) 출신이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51세로 1869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다가 3월 5일부터 시작된 덕천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평남 덕천군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5일 시작되어 3월 7일에는 대규모로 시위가 일어났고 3월 14일에도 십 수 명이 만세시위를 하였다. 덕천군의 만세시위는 천도교와 기독교가 주축이 되었는데, 덕천 천도교구의 공선원(共宣員)인 현성재(玄聖才)가 기독교 측과 교섭을 하여 시위를 준비하였고, 김사진(金泗振)·방효준(方孝俊)이 주도하였다. 3월 5일 오후 천도교와 기독교 교인 40여 명이 덕천 읍내의 천도교구당 앞에서 모여서 조선독립선포식을 열었다. 시위대는 가두로 진출하고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고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시위 소식을 듣고 출동한 일제 헌병과 경찰이 3~4명을 검거하였으나 시위가 잦아들기는커녕 시위군중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 300명 정도의 대규모가 되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경찰은 50여 명을 검거하고 이어 평양에 병력 파견을 요청하였다. 평양에서 파견된 병력이 도착한 3월 7일, 시위대 규모는 더 커져 있었다. 오후 1시경에 6백여 명의 군중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쳤고, 일제는 이 날 시위에서 40여 명을 검거하고 평양에 병력 증파를 다시 요청했다. 그러나 덕천군의 만세운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3월 14일에도 이어졌다. 만세시위 현장에서 김사진·방효준 등과 함께 앞장 서서 만세를 부르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붙잡혀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을 받았고,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19년 7월 2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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