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용
安相鎔1900. 7. 8 ~ 1919. 4.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수원군 향남면 발안장터 만세운동
- · 제암리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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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900년 7월 8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향남면(鄕南面) 제암리(堤岩里; 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안상순(安相淳)을 사용하였다. 부친은 수원 향남면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일본군에 의해서 제암리에서 학살당한 안경순(安慶淳)이다. 부인은 김순이이다. 안경순과 함께 발안장터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제암리에서 희생되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7개 도시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제히 일어났다. 만세시위와 독립선언서 작성을 주도한 천도교, 개신교, 불교계 대표 및 학생대표들은 인편을 통해서 독립만세시위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전국 각 지역으로 전파함으로써 만세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추진하였다. 3월 1일 서울 만세시위에 수원의 천도교 인사인 향남면 제암리에 거주하는 전도사 안종후(安鍾厚), 장안면(長安面) 수촌리(水村里) 구장이자 천도교 남양교구 순회전도사인 백낙열(白樂烈), 그리고 팔탄면(八灘面) 고주리(古洲里)에 거주하는 김성열(金聖烈)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수원에 돌아온 후 수원 지역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준비를 하였다. 그 중에서도 백낙열은 천도교 인사들과 회합하면서 수원군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고자 했으며, 그 일환으로 고주리의 천도교 지도자 김흥열(金興烈)에게 만세시위를 이끌 인사들의 파견을 요청하였다. 이에 3월 16일 김흥열은 제암리 전도사로 있었던 안종후와 안종린(安鍾璘)을 천도교 수원교구실로 파견하였다. 수원의 천도교구는 향남면의 만세시위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백낙열에게 장안면과 우정면(雨汀面)의 만세시위를 이끌도록 했으며, 김흥열에게 향남면과 팔탄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도록 하였다. 팔탄면(八灘面) 가재리(佳才里)에 거주하는 유림 이정근(李正根)은 백남열의 권유를 받아들여서 김흥열이 이끄는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로 결심하였다. 3월 31일 발안 장터에서는 1,000여 명의 시위대가 집결하였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발안 장터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향남면 천도교 지도자 김흥열·김성열(金聖烈)·안종환(安鍾煥)·안정옥(安政玉)·이정근은 시위대를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발안 시장의 일본인 거주지역으로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주재소를 비롯해서 일본인 가옥을 상대로 투석전을 벌였으며, 일본인 소학교에 방화하였다. 이정근은 제자들을 이끌고 그가 작사한 「3·1독립가」를 부르면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일제 군경은 발안 장터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일제 군경의 폭력적 진압으로 이정근이 사망하였다. 4월 1일 저녁에도 발안 장터 일대에서 시위가 계속되었다. 시위대는 발안 시장 일대의 일본인 가옥을 방화하였다. 저녁 7시 경 김흥열·백낙열, 그리고 이정근의 제자 등은 발안 일대에서 수원군의 봉화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발안 시장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격화되자 발안에 거주하는 일본인 43명은 인근 삼계리로 대피하였다. 3월 말에 본격화되었던 수원군 일대의 만세시위는 일제 군경의 강경 진압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4월 3일 장안면과 우정면의 시위대는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불태웠으며, 그 과정에서 일본 순사가 사망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아리타(有田俊夫) 중위가 이끄는 일본군 제20사단 39여단 78연대 소속의 소대가 수원군에 파견되었다. 4월 4일 아리타 부대는 우정면 화수리를 포위한 후 가옥에 방화하고 동네 주민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였다. 4월 5일 새벽에는 장안면 수촌리의 조선인 가옥을 상대로 방화하는 한편, 화재에 놀라서 탈출하는 조선인들을 향해서 총을 쏘았다. 그 밖에 아리타 부대는 장안면과 우정면 일대의 조선인 가옥을 방화하는 한편, 동네 주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전개하였다. 4월 14일 아리타 부대는 송산면, 마도면, 서신면 일대에 출몰해서 시위 참여자 체포를 이류로 가옥을 방화하고 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였다. 4월 15일 오후 2시경 시위대의 일원으로 발안 장터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400여 명이 모인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 날 일본인 사사카(佐板)와 조선인 순사보 조희창(趙熙彰)을 앞세운 아리타 소대가 제암리에 도착하였다. 아리타는 주민들에게 15세 이상 남자들을 제암교회로 모이도록 하였다. 부친 안경순을 비롯해서 주민들과 함께 제암교회로 들어갔다. 교회에 모인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한 아리타 부대는 제암교회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다. 사격을 마친 후 아리타 부대는 석유를 입힌 짚더미로 교회 및 가옥을 방화하였다. 무차별 사격과 방화를 피해서 자택으로 피하였지만, 일본군의 색출 과정에서 발각되어서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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