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규
安尙圭1890. 9. 20 ~ 1973. 1.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보성군 벌교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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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0년 9월 20일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동초면(東草面) 신기리(新基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보성군 벌교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전국에서 일어나던 만세운동에 공명하여 스스로 앞장서서 ‘조선독립만세’를 불러 민중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우리들 청년은 국파군망(國破君亡)한 이때를 당하여 일사보국(一死報國)하자”는 이팔사(二八社)의 회원이었다. 이팔사는 표면적으로 부모의 상 때 계원끼리 서로 돕는다는 위친계로 불렀다. 1919년 4월 7일 동초면사무소에서 “만국재판소에서 조선 독립을 허용한다는 요지의 기사가 게재되고 각국 식민지도 각기 본국의 기반(羈絆)을 벗어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심을 굳혔다. 4월 14일 오전 동초면 김천근(金千根)의 집에 동지들과 모여 안응섭(安應燮)과 안용갑(安鏞甲)으로부터 “현재 조선 각지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는 조선독립운동은 우리의 뜻에 합당하니 여기에 모인 사람은 누구나 뜻을 합쳐 일반 민중에게 조선독립사상을 선동·유발하기 위해 벌교시장으로 나가 독립만세를 외치자”는 제안을 듣고 찬동하였다. 4월 14일 오후 3시 안응섭 등과 함께 벌교시장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같은 날 오후 6시 무렵에는 시위 도중에 헌병에게 체포된 안규진(安圭晋)과 안운수(安雲洙)를 구출하려고 벌교헌병분견대로 가서 인근의 사람들과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5월 8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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