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봉하
安鳳河185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2)
관련 사건
- · 수안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2)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수안면(遂安面) 석교리(石橋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0년 당시 65세인 것으로 보아 1855년생으로 추정된다. 수안군 천도교구장으로, 1919년 3월 3일 수안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7개 도시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천도교 중앙총부는 각 지역의 천도교구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함으로써 만세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서울 천도교 중앙총부 월보과장(月報課長) 이종일(李鍾一)은 황해도 곡산군(谷山郡) 곡산면(谷山面) 남천리(南川里)에 거주하였던 천도교도 이경섭(李景燮)에게 만세운동의 확산을 지시하였다. 수안군 천도교구장으로 3월 1일 저녁 수안면 석교리에 도착한 이경섭을 만났다. 그 만남에는 김영만(金永滿)·나찬홍(羅燦洪)·최용식(崔鎔植)·이영철(李永喆)·홍석정(洪錫楨)·한청일(韓淸一)이 함께 하였다. 이경섭은 이들에게 33인이 발표한 독립선언서 70장을 전달하며 서울의 만세운동과 같이 수안군에서도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지시하였다. 평소 독립을 희망하였기에 이경섭이 전한 만세시위의 취지에 적극 호응하였다. 그 날 회의에 참석한 나찬홍을 비롯해서 수구면(水口面) 석달리(石達里)에 거주하는 천도교 전도사 이승필(李承弼), 천도교인 한국영(韓國英)에게 독립선언서를 배부하였다. 그러면서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시위의 적극적 참여를 독려하도록 지시하였다. 3월 2일 수안 천도교구실에서 평소 독립을 염원하였던 동지들과 회합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3월 3일 수안군 일대에서 천도교인들을 모아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수안헌병분대 퇴거를 요구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만세시위의 구체적인 실행 방법은 한청일과 홍석정이 맡기로 하였다. 이와 더불어 도소면(道所面) 금화리(金化里)의 천도교 전도사 김종호(金宗鎬), 오동면(梧洞面)의 천도교 교도 이금분(李今芬), 그리고 김종석(金宗錫)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면서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도록 하였다. 이명분(李明芬)에게는 독립선언서 한 부를 면사무소에 넣고 또 한 부를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시장 게시판에 붙이도록 지시하였다. 그런데 3월 2일 오후 3시경 황해도 경무부장이 수안헌병분대장에게 전보를 보냈다. 그 전보에는 서울에서 지방으로 독립선언서가 배부되었다는 흔적이 포착되었기에 천도교구실을 임의로 수색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전보에 의거해서 헌병분대장은 헌병들과 함께 수안천도교실을 급습해서, 소사실에서 독립선언서를 발견하였다. 이 일로 천도교구실에 있었던 천도교 인사들과 함께 수안헌병분대로 끌려갔다. 일제는 수안군 시위 참여자에 이른바 내란을 적용하려고 했으나,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이 성립하지 않는다며 사건을 경성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같은 해 8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죄, 가택침입죄로 재판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그 해 1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