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수
金今守1891. 10. 11 ~ 1943. 12.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5)
관련 사건
- · 용문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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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5) 1891년 10월 11일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용문면(龍門面) 상금곡리(上金谷里)에서 태어났다. 자는 윤도(允道), 호는 경암(敬菴)이다. 예천군 용문면의 만세 시위는 권석인(權錫寅)을 위시한 권씨 일족과 박태원(朴泰元) 등의 주도로 계획되었다. 권석인은 고종의 장례에 참가하려고 상경하였다가 만세 시위를 목도하고 독립선언서를 소지한 채 고향인 경북 예천으로 돌아왔다. 이어 재종형인 권석호(權錫虎)와 만세 시위 소식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며 자체적인 만세 시위를 준비하기로 하고 3월 12일 예천 장날을 기해 거사를 실행하기로 결의하였다. 만세 시위를 준비하던 박태원에게 거사 계획을 듣고 동참하였다. 준비 과정에서 군경이 첩보를 입수하고 12일 장날 경계 태세를 강화하자 부득이하게 거사 일을 다음 장날인 17일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군경이 사전에 원천 봉쇄하자 시위를 거행할 수 없었다. 계속되는 거사의 연기에 주도자 중 한 명이던 김형식(金亨植)은 4월 2일을 마지막 거사 일로 정하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날 시위를 거행하자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4월 2일 권씨 일족은 죽림동 밭에서, 박태원 등은 면소재지인 상금곡동(上金谷洞)에서 주민과 함께 만세 시위운동을 거행하기로 확정하였다. 4월 2일 권씨 일족이 죽림동 밭에서 만세를 고창하며 만세 시위를 시작하였고, 밤 10시경 박태원 등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수백 명의 주민을 이끌고 상금곡동 면 소재지에 집결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횃불을 흔들고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면사무소와 동리 전역을 행진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군경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강제해산시키고 시위 주동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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