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柳相烈

相烈

1885. 10. 28 ~ 1922. 8. 28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柳相烈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황해 평산(平山)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평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주비단

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3) 1885년 10월 28일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세곡면(細谷面) 수동리(修洞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황해도 평산군 누천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한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내활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平壤) 등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어 평산군에서는 3월 7일 만세시위가 일어났고, 4월까지 지속되었다. 세곡면 누천리(漏川里) 일대에서는 3월 28일 태극기 게양이 있었고, 4월 2일 장날을 이용하여 민홍식(閔弘植)·최헌영(崔憲永)·이대성(李大成) 등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날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7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헌병 분견소를 습격하고 유리창을 부수며 분견소장을 징치하였으나 4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때 만세시위 주도자들을 붙잡으려는 일제 군경을 피해 은거하였다. 이즈음 상하이(上海)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소식에 고무된 이민식(李敏軾)·장응규(張應圭)·여준현(呂駿鉉) 등은 1919년 6월경 주비단(籌備團)을 결성하고 임시정부와 연락을 구축하였다. 특히 주비단의 단원이자 임시정부의 특파위원(特派委員)이었던 김치거(金致擧)와 민승현(閔昇顯) 등은 황해도 내의 활동 확대를 모색하고 있었다. 1920년 (음)7월 15일경 민승현이 찾아와 『독립신문』 등 임시정부의 간행물을 보여주며 임시정부의 활동을 알리고, 주비단의 존재와 자신이 평산군 대단장(大團長)임을 밝히며 가입을 권유하였다. 이에 즉시 동의하고 가입하여 이후 1개월간 소단장(小團長)으로서 10여 명을 권고하여 주비단에 가입시키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같은 해 11월에는 임시정부의 지시로 평산군 내의 자산가에게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하였으나, 이러한 활동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자 민승현 등과 함께 피신하였다. 1921년에는 임시정부로부터 무기를 입수하여 평산군·연백군(延白郡)·금천군(金川郡)·강녕군(康寧郡) 등에서 활동하였다. 같은 해 (음)4월에는 민치영(閔致泳) 등 동료 10여 명과 함께 평산군 각 면의 구장(區長)과 부유층에게 임시정부에 보낼 군자금을 각출하라는 통지서를 배부하였다. 이러한 활동 중 4월 18일 세곡면 수곡리(修谷里)에서 평산경찰서의 밀정으로 의심되는 이칠성(李七星)·이범락(李範洛)을 처단하였다. 이후에는 일본에 협력하는 관계자, 부호 등에게 경고장을 발송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제 경찰의 추적에 곧 붙잡히고 말았다. 1921년 10월 6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사형을 받았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4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그 해 7월 27일 고등법원에 기각되었고, 8월 28일 평양감옥에서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원재영⋮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