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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학

元容鶴

1918. 8. 29 ~ 1976.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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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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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高敞)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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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3) 1918년 8월 29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흥덕면(興德面) 신송리(新松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원촌용학(元村容鶴)을 썼다. 보통학교를 마치고 고창중학교(高昌中學校)에 진학하여 졸업하였다. 1940년경 학업을 목적으로 일본 도쿄로 건너가 릿쿄대학(立敎大學) 상과(商科) 예과(豫科) 과정에 입학하였다. 도쿄에 유학 중 고창중학교 선·후배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특히 주오대학(中央大學) 제1예과에 재학 중이던 배종윤(裵宗潤, 창씨명 武田英雄), 요코하마전문학교(横浜專門學校) 고등상업과 재학생 강상호(姜相湖, 창씨명 神農相號)와 자주 교류하였다. 그러던 중 배종윤의 제안에 따라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그 실천에 나섰다. 동지들과 함께 1941년 6월 무명(無名)의 비밀결사를 만들고 수시로 모임을 개최하였다. 회합에서는 민족의식과 독립의지를 강화할 목적으로 일제 식민정책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토론이 이루어졌다. 한편으로 세계대전의 전황 등 각자 습득한 정보에 기초하여 독립 쟁취 방략, 동지 규합 방안 등을 협의하고 이를 실천할 때를 기다렸다. 이들 모임에서 논의된 내용 중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일본의 조선 통치는 전부 조선을 무시하는 비인도적 식민정책’이므로, 굳건히 단결하고 대항하여 ‘조선민족의 원한’을 갚을 것, 조선의 고유문화를 말살하여 농민들을 더욱 무지몽매(無智蒙昧)하게 만들려는 일제의 계략에 항거하기 위해 먼저 민족의 지도자로서의 자의식을 앙양할 것 등을 결의하고, 매회 이러한 의식을 강화하는 데 노력하였다. 1941년 7월에 열린 회합에서는 아시아, 유럽전쟁의 추이에 대해 논의한 뒤, 조만간 일본과 미국이 서로 전쟁을 벌여 결국 일제가 필패할 것을 예측하였다. 이들은 이러한 견해를 토대로 머잖아 미국의 공습으로 도쿄 시내가 대혼란에 빠진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따라서 이때를 절호의 기회로 삼아 국내와 일본에서 일제히 봉기해 독립을 쟁취할 것을 협의하고, 우선 도쿄에 있는 유학생들을 규합해 조직을 공고히 하기로 하였다. 이후 동지들과 함께 각자 다니고 있는 대학의 한인 학생에게 민족의식을 주입한 뒤 이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데 진력하며 전황을 예의주시하였다. 그러나 비밀결사 활동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다. 1941년 10월 14일 배종윤·강상호 등 주요 회원들과 함께 경찰에 붙잡혔다. 구속된 채 약 11개월에 걸쳐 경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으며 고초를 겪었다. 1942년 7월 25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사국에 송치되었으나, 그 해 9월 28일 기소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그러나 1942년 11월 10일 일제 경찰의 ‘특별요시찰인(特別要視察人) 명부’에 등재되어,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감시 속에서 지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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