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선
吳泰善1895 ~ 1927. 9.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간도 대한국민회
- · 의열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9)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 장원면(長原面) 신흥리(新興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6년 당시 32세인 것으로 보아 1895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오성민(吳成民)·오춘원(吳春園)을 사용하였다. 고향에서 사립 중학 3년을 마치고 1919년경 부모와 함께 북간도(北間島)로 건너가,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팔도구(八道溝)의 태평동(太平洞)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러던 중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간도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의 피복과원(被服課員)이 되어 활동하였다. 일본군이 자주 국경을 넘어와 독립군을 압박하고 한인 이주민들을 위협하자 러시아로 갔다가 다시 간도로 돌아와 지린성 닝안현(寧安縣) 지방의 한인사회와 독립운동단체들을 순방하였다. 1925년 가을 경 단원 방호인(方浩仁)의 소개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고 김국창(金國昌)·한석태(韓碩泰)와 1조를 이루어 모연(募捐) 활동을 개시하였다. 1926년 (음)1월 20일경 옌지현 명당현(明堂峴)에 사는 자산가 김재범(金載範)에게서 2회에 걸쳐 군자금 150원을 거두었고, 그 후로도 허륭현(和龍縣)과 옌지현 일대에서 수차에 걸쳐 다액의 의열단 운동 자금을 모집하였다. 1926년 7월 17일 의열단 모연대(募捐隊)의 활동 정보를 입수하고 추적하여 증봉리(甑峯里)의 은신처를 급습한 간도총영사관 두도구분관(頭道溝分館) 경찰서원 3명에게 붙잡혔다. 이 일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겪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고문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1927년 9월 13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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