沈正鵬
正鵬1910 ~ 1930. 7.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2)
관련 사건
- · 1930년 7월 단천군 삼림조합 반대군민투쟁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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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2) 1930년 7월 당시 함경북도 단천군(端川郡) 하다면(何多面) 백자동리(柏子洞里)에 거주한 것으로 보아 단천 출신인 것으로 보인다. 1930년 당시 21세로, 1910년생인 것으로 추정된다. 1930년 7월 18일부터 7월 20일에 걸쳐 전개된 단천군 삼림조합반대투쟁에 동참하였다가, 7월 20일 일제 경찰이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고자 발포하였을 때 총에 맞아 중상을 입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였다. 일제는 조선임야조사사업 직후 산림보호와 개발을 빌미로 관제 조직인 삼림조합을 군단위로 결성케 하고 임산물채취금지규정을 제정하여 군민들의 숯과 땔감 생산을 엄금하였다. 함경북도 단천군에서도 1929년 3월부터 군 삼림조합 결성을 추진하면서 생존권 박탈에 항의하는 단천군민들의 반대투쟁이 확산되었지만, 군 당국은 서둘러 1930년 5월에 조합결성을 강행하였다. 조합 설립 후 삼림 간수들이 단천군민들의 임산물채취금지규정을 무리하게 적용하자 군민들의 삼림조합 반대 분위기도 고조되어 갔다. 1930년 7월 단천군 하다면 삼림 간수가 연대리(蓮坮里) 주민의 도벌(盜伐) 혐의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임산부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분개한 연대리 주민들은 단천군 농민운동지도 세력들과 협력하여 삼림조합에 대한 반대투쟁을 계획하였다. 1930년 7월 18일에 단천군 하다면에 모인 면민 200여 명은 면사무소와 단천군청으로 몰려가 삼림조합의 부당행위 척결을 요구하였다. 일제 경찰이 조속한 처리를 약속하자 이를 믿고 해산하였으나 그 날 밤에 시위를 주도한 50여 명이 검거당하였다. 시위대의 검거 소식을 들은 하다면민 400여 명은 다음날인 7월 19일에 다시 집합하여 단천군청에서 연좌시위로 항거하면서 삼림조합 반대를 외치며 군수면담을 요청하였다. 당국의 면담수용으로 해산하였지만 군민들은 삼림조합반대투쟁을 관철시키고자 단천군 내 8개 면의 군민대회를 계획하였다. 7월 20일에 단천군 하다면·파도면(波道面)·복귀면(福貴面)에서 2,000여 명의 군민들이 군민대회에 가담하였다. 군민대회의 대표자는 군수 임창재(任昶宰)에게 관제 삼림조합해산과 피검자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군수가 요구에 응하지 않자 군민들이 격분하여 군청 유리창을 깨뜨리며 군수와의 면담을 요구하였고, 일부는 경찰서로 이동하여 체포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자 경찰과 정면 충돌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 30여 명은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키려고 공포탄과 실탄을 발포하면서 시위 군민들 중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투쟁하던 중 일제 경찰의 총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함께 투쟁에 동참했던 시위대 중 최두필(崔斗弼)·장종형(張宗亨)·김계환(金啓煥) 등은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총상을 입은 이원호(李元鎬)·안경룡(安京龍)·허병률(許丙律)·안병환(安丙煥) 등은 이후 사망하였다. 그 외에 총상을 입은 중경상자는 원용섭(元容燮) 등 십 수명이었다. 이때 총을 맞아 중상을 입고 병원 치료를 받던 중 결국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강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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