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균
申亨均1920. 1. 2 ~ 1984. 7. 1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동지회(비밀결사)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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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3) 1920년 1월 2일 충청북도 진천군(鎭川郡) 만승면(萬升面) 내촌리(內村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평전형균(平田亨均)이라는 창씨명을 사용하였다. 전해진 자료의 한계로 집안 내력 등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1938년 서울 양정중학교(養正中學校) 재학 중에 심훈(沈熏)·이기영(李箕永) 등의 민족적 성격이 짙은 소설과 글을 읽고 같은 해 2월에 항일 비밀결사 동지회(同志會)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의 실행 방법에 대해 협의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이후로 1941년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킨 일본 제국주의는 전시 파시즘을 향해 치닫고 있는 와중에, 한국을 이른바 ‘총후(銃後)’의 사회이자 ‘정신총동원(精神總動員)’의 이름으로 재편해갔다. 그리고 전세가 점차 일본에 불리해져 감에 따라 그 불안감을 없애기 위한 노골적인 억압과 동원정책들이 강행되었다. 그러나 한국인 학생들은 당시 비록 친일·우민화교육을 받고 있었지만,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조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일제의 패배와 한국의 독립을 앞당길 방법에 대해 논의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비밀결사를 만들어 실행에 옮기고자 하였다. 1937년부터 서울 양정중학교 재학 중 심훈의 『상록수(常綠樹)』, 이기영의 『고향』 등 민족적 성격이 짙은 소설을 읽으면서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1938년 2월 서주원(徐周元)과 함께 이광수(李光洙)의 『흙』을 읽고 한국의 농촌과 농민의 실상과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고 강경석(姜璟錫)·이완익(李完益)·최창규(崔昌圭) 등의 동급생들을 규합하여 항일 비밀결사인 동지회를 조직하여 경성부(京城府) 통의정(通義町)(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자택 등에서 회원 등과 함께 한국독립의 실행 방안에 관하여 협의하였다. 이렇게 활발히 활동하던 중 1941년 6월 30일 동지회 조직 및 활동 사실이 발각되어 경성경찰서에 붙잡히게 되었다. 같은 해 7월 15일 검사국에 송치되었고 1942년 7월 7일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및 육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25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옥고를 겪던 도중 1943년 10월 31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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