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유승언

劉承彦

1879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유승언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평북 희천(熙川)의열투쟁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희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천마산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1)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북면(北面) 명문동(明文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4년 당시 46세인 것으로 보아 1879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평북 의주군(義州郡) 고령삭면(古寧朔面) 천마산(天摩山)을 근거로 조직된 천마산대(天摩山隊)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천마산대는 단장 최시흥(崔時興)·최지풍(崔志豊) 등을 중심으로 대한제국 군인 출신들이 많았다. 1920년 1월에서 9월까지 평북 일원에서는 관공리나 친일 분자들이 경찰의 보호 없이 출입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는 평북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천마산대와 보합단의 활동 때문이었다. 1922년 천마산대는 통의부 산하로 들어가 의용군 제3중대에 소속되었다. 천마산대원들은 중대장 최지풍의 지휘 하에서 국내에 머물며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23년 9월 21일 밤 9시경 30여 명의 대원들과 함께 희천군 북면 명문동에 잠입하였다. 먼저 전화선을 끊어 통신을 두절시키고 일제 경찰의 병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여러 곳에 불을 질렀다. 이후 면사무소와 창참주재소(倉站駐在所)를 습격하여 경관 1명을 사살하고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전소시켰다. 이 일로 천마산대 청년대원 등 20여 명과 함께 붙잡혀 1923년 12월 2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살인·방화 등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11일간 고문을 당한 후 이 같은 판결을 받자, 평양복심법원에 항소하였다. 이들은 고문의 상처를 증빙해 감정서를 제출했는데, 8개월이 지난 뒤에도 고문의 상흔이 완연히 남아있었다. 상처로 온 몸이 푸릇푸릇하게 손상된 대원들도 있었으며, 그 역시 타박상과 긴박상(緊縛傷) 자국이 남아있었다. 일명 ‘희천서 고문 사건’으로, 각계의 비난이 빗발쳤으나 1924년 7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신의주감옥에서 약 4년간 옥고를 겪은 뒤, 1927년 11월 15일 가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걸순⋮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