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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道發

道發

1832. 6. 28 ~ 1910.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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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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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계몽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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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독립장(196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2) 1832년 (음)6월 28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풍산면(豐山面) 하회동(河回洞)에서 아버지 세자시강원 부수(世子侍講院副率) 유진휘(柳進徽)와 어머니 안동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승수(承叟), 호는 회은(晦隱)이다. 유성룡(柳成龍)의 10세손이다. 1877년 봄 아버지가 송화군수로 재직하고 있는 관아에 가서 생활하였다.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의 궁핍한 것을 보면 자기 자신의 아픔처럼 생각하여 반드시 도와주었다. 만년에 경북 의성군(義城郡, 현 임실군 전북 임실군) 신평면(新平面) 덕암리(德巖里)에 우거하였다. 유도성(柳道性)·유도헌(柳道獻)·유도구(柳道龜)·유도필(柳道弼)·이만인(李晩寅)·장석룡(張錫龍)·이수형(李壽瀅)·이종기(李種杞)·김상흠(金尙欽) 등과 교유하였다. 1910년 8월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병탄했다는 소식을 듣고 9월 28일 하회에 가서 선묘(先墓)에 두루 절하고 선조에 대한 느낌과 어려운 시대에 대해 상심하는 감회를 금하지 못하였다. “내 나이 80에 나라가 망하고 국왕이 장차 이국(異國)의 포로가 되겠으니 그 욕됨이 심하다. 하물며 세신(世臣)의 후손임에 있어서야!”라고 하였다. 교유하던 사람들에게 일일이 마지막 결별을 하고 선영을 참배하고 돌아와 자리를 펴고 고종이 있는 북쪽을 향하여 네 번 절하고는 밥술을 들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 11일에 이르러 드디어 식음을 끊고, 마지막으로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 “내가 좋은 시절에 태어나 늙어 일찍이 학식으로 남에게 칭찬을 받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러 나이가 80이 가까이 되었다. 종사(宗社)가 망하여 장차 이국(異國)의 백성이 되겠으니 남은 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구차하게 살기를 도모하는 것이 또한 욕된 것이 아닌가. 이후로는 다시 음식을 나에게 권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맏아들 신영(臣榮)이 눈물을 흘리며 “선비가 의(義)에 처함은 대부(大夫)와 같지 않으니 하필 이와 같이 하십니까”라고 하자 “선조인 서애(西厓, 유성룡) 할아버지의 후손으로 태어나 아버지(유진휘)를 모시고 세 고을의 봉록을 먹었으니 어찌 벼슬이 내 몸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내 뜻이 이미 정해졌으니 다시는 길게 말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11월 12일 시 「자탄(自歎)」 한 수를 읊어 자결의 의지를 표명하였다. 11월 17일 밤에 「자명(自銘)」을 지어 스스로를 애도하면서 자신의 뜻을 표현하였다. 11월 25일에 일본 관리가 와서 면회를 청하여 단식을 만류하자 큰 소리로 “불공대천의 원수를 어찌 상대할 수 있겠는가. 울분을 이기지 못하겠다”라고 하였다. 유언으로 사후에 “명정(銘旌)은 ‘대한처사(大韓處士)’로 쓰라”라고 하였다. 단식 17일째인 11월 27일[(음)10월 26일]에 사망하였다. 1911년 3월 22일에 안동의 화산(花山)에 장사지냈다. 신위(神位)는 전북 진안(鎭安)의 대한이산묘(大韓駬山廟)에 배향되었으며, 저술로는 『회은유고(晦隱遺稿)』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권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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