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禹龍澤

禹澤

1868. 9. 14 ~ 1940. 5. 24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禹龍澤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의성(義城)계몽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충의사
  • · 대한자강회
  • · 대한협회
  • · 태극교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68년 9월 14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안계면(安溪面) 교촌리(校村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선산군(善山郡) 해평리(海平里)로 이사하였다. 모친 김씨가 태몽으로 용꿈을 꿔서 용택(龍澤)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재현(在見), 호는 육봉(六峰)이다. 몸집이 크고 건장하여 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눌 때 두려워할 정도였다. 1904년 2월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한 뒤에 내정간섭을 하자, 같은 해 3월 서울에서 여중용(呂中龍)·허위(許蔿)·이건석(李建奭) 등과 함께 충의사(忠義社)를 결성하였다. 궁극적인 목적은 황실 안녕, 인민 보호, 인재 양성, 군대 육성 등을 통한 자강책을 강구하는데 있었다. 1905년 3월 이병구(李秉九)·강원형(姜遠馨) 등과 더불어 일제의 침략 행위를 규탄하는 서한을 일본군사령부와 각국 공사관에 발송하고 친일 매국 단체인 일진회를 규탄하다 경무청에 붙잡혔다. 1905년 8월 외부대신 이하영(李夏榮)이 연해 하천 항행 무역권을 일본인에게 넘겨주자, 이하영을 찾아가 얼굴에 침을 뱉으며, “네가 매국(賣國)을 하다못해 내천(內川) 항행(航行)까지 허락을 하였으니 이제 하천은 끝났다. 그리고 또 무엇을 팔아먹을래?” 하고 크게 고함을 지르며, “저 역적을 죽여라” 하며 이하영의 옆구리를 차고 볼을 잡아당겨 분위기가 매우 험악해지자 이하영이 가족을 불러 겨우 위기를 모면하였다. 하지만 일본 헌병대에 끌려가 6개월 동안 옥고를 겪고 1906년 2월에 풀려났다. 이외에도 많은 일화를 남겼고 경무청에 여러 번 붙들려갔다. 1907년 여중용·이병구·지우석(池禹錫) 등과 일본 공사관을 폭파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붙잡혀 8개월간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대한자강회·대한협회·태극교(太極敎) 등에 참여하여 국권 회복을 위한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진회가 1909년 12월 「한일합방 건의 성명」을 채택하자, 1910년 1월 「포고동포문(布告同胞文)」과 「토국적일진회문(討國賊一進會文)」을 배포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계형⋮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