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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熺倬

熺倬

1885. 6. 18 ~ 1965.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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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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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居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거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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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거창군 위천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2) 1885년 6월 18일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위천면(渭川面) 남산리(南山里) 금곡(金谷)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거창(居昌)이며, 대사헌을 지낸 영계(濚溪) 유환(劉懽)의 후손이다. 자는 사범(士範), 호는 남제(南齋)이며, 유한제(劉漢濟)라는 이명이 있다. 천성이 강직하며 의를 중시하였는데, 1919년 4월 8일 거창군 위천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앞장섰다. 거창지역의 만세운동은 지역 유림들이 적극적으로 주도하였다. 고종의 사망사실을 접한 이주환(李柱煥)이 자결로 거창 지역의 지식인들은 독립에 대해 각성하고 조국 독립에 대한 희생을 각오하게 되었다. 그래서 거창의 만세운동은 지역 유림들의 조직적인 동원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자발적 활동과 민족의식으로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위천면 남산리 금곡마을에서 정대필(鄭大弼)과 함께 일제에 대한 항거를 결심하여 고현장날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고 4월 8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정수필(鄭洙弼)·유한탁(劉漢倬)·이형준(李衡俊) 등을 규합하여, 위천·마리(馬利)·북상(北上) 3개 면의 지역 유생들에게 비밀리에 소식을 알렸다. 일본 관헌이 이 사실을 미리 탐지하고 주도자의 체포에 나섰지만 미리 피신하였다. 1919년 4월 8일 정오 수많은 인파가 모여든 가운데 위천 고현장터 중앙으로 나아가 ‘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군중이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대가 헌병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면서 일본인은 물러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일본 헌병대는 폭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정대필과 함께 붙잡혔다. 시위의 주도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일본 헌병이 구속된 이들에게 고문을 가하자, 스스로 나서면서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묻고 다른 이들을 즉각 석방하라고 요구하였다. 1919년 5월 1일 부산지방법원 거창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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