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致筮
致筮1879. 5. 8 ~ 1928. 12.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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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0) 1879년 5월 8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화성면(化城面) 산정리(山亭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청양군 화성면 산정리 만세시위 참여하였다. 화성면 독립만세운동은 산정리의 박공삼(朴公三)과 조남희(趙南熙) 주도로 1919년 4월 5일부터 시작되었다. 산정리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는 것에 의견이 일치한 박공삼과 조남희는 마을 사람들을 소집하여 만세운동을 제안하였다. 이들로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만세운동에 대한 소식을 듣고, 20여 명의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산정리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는 것에 동의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즉시 박공삼과 조남희의 지휘에 따라 태극기 2기를 정자동(亭子洞)에 게양하고, 큰 종을 울리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산정리의 만세시위는 4월 5일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인 4월 6일에는 만세시위를 더욱 확대하여 전개할 생각으로 박공삼·조남희 등 전날 시위에 참여한 산정리 주민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화성면사무소를 향해 행진하여 오전 10시 경 면사무소 증축 공사공사 현장에 도착하였다. 면사무소의 증축공사에는 목수 3명과 인부 20여 명이 일하고 있었는데, 박공삼은 만세시위대의 위세를 배경으로 곧바로 이들에게 “조선은 이미 독립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증축 공사는 필요하지 않다”고 하면서 중축 공사를 중단하고 현장에서 물러나도록 압박하였다. 공사 현장의 목수들과 인부들이 물러남에 박공삼과 조남희를 필두로 만세시위대와 함께 공사 현장을 습격하여 건물을 완전히 파괴한 뒤 면소재지의 곳곳을 행진하며 주민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지속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산정리로 출동한 일제 헌병의 만세시위자 색출과정에서 붙잡혔다. 청양헌병분견소로 연행되어 조사받는 과정에서 2일 간의 화성면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이 인정되었다. 이에 1919년 4월 18일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태형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1928년 12월 28일 30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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