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次孫
次孫1900. 6. 8 ~ 1937. 12.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평산군 금암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0년 6월 8일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금암면(金岩面) 한포리(汗浦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1일 금암면 한포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고등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음식점에서 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천도교주 손병희(孫秉熙)는 서울의 만세시위를 앞두고 평산군 출신인 이동락(李東洛)에게 고향으로 가서 만세시위를 주도할 것을 부탁하였다. 1919년 3월 2일 이동락은 평산군에 도착하였지만, 일본 헌병에 의해서 거주 제한을 당하였다. 이에 이동락은 금천군(金川郡)에 거주하는 천도교인 강창선(姜昌善)을 통해서 비밀리에 평산군에서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1919년 3월 7일 평산군의 천도교인들은 장날을 맞이하여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일제 군경은 만세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였지만, 이튿날인 3월 8일 평산군 주민들은 장터를 중심으로 만세시위를 재개하였다. 일제 헌병대는 평산군 만세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하였으며, 평산군 일대의 감시를 강화함으로써 평산군 일대에서 만세시위가 재개되거나 확산되는 것을 저지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같은 해 3월 말 무렵 만세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평산군 만세시위도 재개되었다. 3월 30일 ‘대한국독립만세(大韓國獨立萬歲)’라는 문구가 적힌 전단이 평산면(平山面)의 은담리(隱潭里)와 빙고리(氷庫里)에서 잇달아 발견되었다. 3월 31일 오후 1시 인산면(麟山面) 기린리(麒麟里) 장터에서는 면서기 엄윤영(嚴允榮)을 비롯해서 인산면과 상월면(上月面) 주민 및 기독교 신자들이 참여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일본 군경은 무력을 동원해서 기린리 장터 일대에서 행진하는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시위대 1명이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31일 오후 9시 무렵 금암면 한포리 장터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한포리에 거주하는 박팽봉(朴彭鳳)·장동환(張東煥)·김충숙(金忠淑)를 비롯하여 마을 구장들이 기독교 교인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한포리 장터 일대를 행진하였다. 출동한 일본 헌병이 시위대의 만세시위를 무력으로 해산시키려고 하자 시위대와 함께 돌을 던지고 작대기를 휘두르면서 일본 헌병의 탄압에 대항하였다. 그러자 일본 헌병이 시위대를 향해서 사격을 하였으며, 그로 인해 시위대에 참여한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일본 군경은 그 날 시위대에 참여한 주민 45명을 연행하였다. 금암면 한포리 만세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일본 군경에 의해서 붙잡혀서 재판에 회부되었다.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7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한국의 독립만세는 평화의 대의에 의해서 감행된 것이며, 민족자결 행위로 치안을 방해할 목적이 없었기에 무죄라고 주장하면서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 해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