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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益秀

益秀

1870. 12. 30 ~ 1926.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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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柳益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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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흥(始興)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시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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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시흥군 수암면 비석거리(3.30)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0년 12월 30일 경기도 시흥군(始興郡) 수암면(秀岩面) 산현리(山峴里, 현 시흥시 산현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직업은 잡화상으로, 3월 30일 시흥군 비립동(碑立洞) 비석거리 만세시위와 3월 31일 수원군(水原郡) 반월면(半月面, 현 안산시 상록구 반월동)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9일 시흥군 수암면 각 마을에는 “3월 30일 만세시위를 할 예정이니 수암리 내 비립동으로 모이라”는 내용의 격문이 돌았다. 3월 30일 오전 수암면 성포리(聲浦里, 현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 구장이 인솔하는 30여 명의 시위대가 자기 집 앞을 지나는 것을 보고 이들을 따라 수암리 비석거리로 향하였다. 오전 10시경 수암면 내 18개리 주민 약 2,000명이 비석거리에 모였다. 성포리 구장의 “이 군중 속에는 난폭한 자도 있으니 만일 주재소 등에 폭행을 가하면 곤란하니 당신이 좀 조정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아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수암경찰관주재소 서쪽 밭에 모여 대형 깃발 2개를 세우고 각자 소형 깃발을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시위대를 지휘하여 수암공립보통학교, 수암면사무소, 공자묘를 순회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위협을 가하며 해산을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고 읍내로 들어가 만세시위를 하였다. 태극기를 흔들면서 시위대의 폭력을 자제시키며 군중을 지휘인솔하고 무사히 해산했다. 1919년 3월 31일 수원군(水原郡) 반월면(半月面, 현 안산시 상록구 반월동) 시장에서 600여 명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다음날 반월면 시장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있던 반월면 서기를 만나 전날 수암리 만세시위 지휘 경험을 말하였다. 그러자 면서기도 “그러면 당신께 오늘 지휘를 부탁한다”고 하였다. 군중 앞에 서서 폭행·협박을 하지 말도록 주의시켰다. 평화적으로 시위를 마치고 술 7원 60전 어치를 사서 시위대에게 대접하였다. 1919년 5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같은 해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었으나, 다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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