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진
兪成鎭1899. 7. 7 ~ 1929. 2.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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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99년 7월 7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화양리(華陽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는 한자가 다른 유성진(兪星鎭)이라고도 썼다. 금마면의 만세운동은 부평리(富平里)의 서당 훈장 민영갑(閔泳甲)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19년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만세운동의 정세를 감지한 민영갑은 같은 마을의 이재만(李載萬)과 협의하여 만세운동을 결의하였다. 이들의 계획에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이 찬성하였고, 적극적으로 동지를 규합하면서 금마면의 만세운동이 구체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들은 그 해 4월 1일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마련된 임시 연극 공연장에서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 것을 기회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4월 1일 오후 지인들과 함께 연극 관람을 위해 연극 공연장에 갔다. 만세운동을 계획한 민영갑 등도 관객으로 참석하였다. 예정대로 연극이 공연되었고, 한참 공연을 보고 있던 오후 8시 갑자기 공연장 안에서 ‘조선 독립 만세’의 외침이 들렸다. 그 외침의 주인공은 민영갑·이재만·조한원·조재학·김재홍·최중삼 등이었다. 이들은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공연장에 모인 주민들에게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들의 호소를 듣고, 크게 공감하여 곧바로 다른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동참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였다. 이에 연극 공연은 곧바로 만세시위로 전환되었으나, 곧이어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되었다. 1919년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본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이 체포당하였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날의 시위 직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조사받는 과정에서 홍성시장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의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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