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우
柳錫瑀1874. 9. 26 ~ 1944. 1.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신상면 유구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74년 9월 26일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신하면(新下面) 만천리(萬川里, 현 공주시 유구읍 만천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유구장터 만세시위는 천도교(天道敎)에서 활동하고 있던 황병주(黃秉周)로부터 시작되었다. 황병주는 서울의 만세운동 과정에서 교주 손병희(孫秉熙)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자신도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황병주는 유구장터의 장날인 1919년 3월 14일 오후 단신으로 장터에 나가 한 무리의 사람들 앞에서 모자를 벗어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홀로 당당하게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황병주의 모습을 보고 크게 공감하여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세시위대를 형성하고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유구주재소 일제 순사들이 출동하여 해산을 명령하며 시위의 중심 인물인 황병주를 연행하였다. 하지만 만세시위대는 해산하지 않았고, 오히려 시위대 속에서 이승현(李升鉉·聖鉉)은 주재소로 가서 황병주를 구출하자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을 듣고 황연성(黃璉性)·박준빈(朴準斌)·노상우(盧相羽)·이우상(李雨相)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동조하여 주변의 사람들을 독려하였다. 1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로 들어가서 황병주의 연행에 항의하며, 그의 석방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하지만 주재소의 순사들은 황병주의 석방을 거부하고, 시위대에게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순사들의 태도에 격분한 박준빈과 현우석(玄宇錫)이 순사들을 구타하고, 기물을 파기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보고 적극 호응하여 동지들과 함께 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여 창문에 돌을 던져 깨뜨리는 등 주재소의 시설을 파괴하면서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공주경찰서는 지원 병력으로 순사와 헌병 10여 명을 유구주재소로 급파하였다. 일제 경찰과 헌병들은 무력을 동원하여 만세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주도 인물 20여 명을 체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붙잡혀 공주경찰서로 끌려갔다. 일제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법원으로 송치되었다. 1919년 6월 16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6월과 벌금 30원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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