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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원

吳基元

1897. 12. 12 ~ 1940.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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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오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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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동래(東萊)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동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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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기장광복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관련 사건

  • · 기장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2) 1897년 12월 12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기장면(機張面) 대라리(大羅里, 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직업은 점원이고, 종교는 기독교였다. 4월 5일 동래군 기장면 기장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일찍부터 비밀결사인 기장광복회(機張光復會)에 참여하였다. 기장광복회는 한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아 국외 독립운동 단체들에게 제공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단체는 1917년 일제 경찰에 발각되었는데, 이때 붙잡혀 조사를 받았다. 1919년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을 때,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 지역에서도 만세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그 해 3월 중순 김도엽(金度燁)·권철암(勸鐵岩)·박공표(朴孔杓) 등 7명은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읽고, 이후 시위 계획을 여러 차례 논의하였다. 그 결과 4월 5일 기장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독립선언서 400매를 등사하고, 큰 깃발 등을 만들었다. 4월 5일 11시경,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김도엽이 혈서로 쓴 대형 깃발을 휴대하고 기장 시장에 가서 장터에 모인 주민들에게 준비한 선언서를 나눠주었다. 그러자 300여 명의 시위대들이 모였고, 이들은 곧 이어 시내를 돌아다니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 경찰은 총을 쏘면서 위협하였으나 시위는 5시까지 계속되었다. 그러자 일제 경찰은 동래군에서 부대를 급파하여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붙잡혀 1919년 5월 1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출옥 후 기장기독청년회에 참여하였다. 이 단체는 1919년 창립되었는데, 여자야학회, 노동야학회를 개최하기도 하였으며, 순회 연극단을 조직하여 교육 계몽운동도 전개하였다. 이때 여자야학회 간사로 활동하였는데, 1926년 5월 1일 오후 9시경 야학 학생들과 ‘메이데이’를 기념하는 행진을 하다가 경찰을 구타하여 기장주재소에 붙잡힌 일도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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