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仁恒
仁恒187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구성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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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1) 평안북도 구성군 방현면(方峴面) 하단리(下丹里) 출신이다. 1919년 판결문에 50세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870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7일 구성군 남시(南市)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계획, 조직하고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평안북도 중부지방에 위치한 구성군(龜城郡)에서는 1919년 서울에서 먼저 일어난 만세시위의 영향을 받아 구성면(龜城面)과 방현면(方現面)의 남시(南市), 사기면(沙器面)의 신시(新市) 등에서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구성군 남시 시장 만세시위는 최예락(崔禮樂)을 중심으로 준비되었다. 1919년 1월 28일자 『매일신보』에서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내용을 접하고 감응을 받은 최예락은 선천군(宣川郡)의 김 모 씨로부터 독립선언서 500매와 주의서(主意書) 500매를 건네받았다. 이때 만세시위에 사용될 태극기와 독립기 모양도 최예락으로부터 함께 받았다. 3월 7일 준비해간 독립선언서와 주의서를 시장에 모인 1,000여 명의 군중에게 배포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장 중앙에 태극기를 높이 달고 만세를 부르며 주민을 움직여 행진하였으나 일제 헌병이 시위 군중에 총을 쏘자 맞서게 되었다.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고, 이때 최예락 등과 함께 일제 헌병에게 붙잡혔다. 재판 과정에서 “조선은 40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민족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적으로 평화가 오는 이러한 시기에 인도 정의의 주장을 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1919년 1월 28일 자 『매일신보』에 실린 세계 각국의 통고문을 보고 일어나기를 결심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불렀으니 이는 본인의 자의로 한 것이 아니라 매일신보가 본인에게 만세를 부르게 한 것이며, 따라서 이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을 받을 일이 아니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인도정의와 세계평화는 한낱 낭설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919년 6월 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상고하였으나, 그 해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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