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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삼

安德三

1874. 2. 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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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안덕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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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개성(開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개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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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개성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0) 1874년 2월 5일 경기도 개성군(開城郡) 송도면(松都面) 만월정(滿月町)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인으로 1919년 3월 4일 개성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해서 평양(平壤)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제히 일어났다.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시위를 주도한 천도교, 기독교, 불교계 대표와 학생대표들은 인편을 통해서 만세시위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전국 각 지역으로 전파함으로써 만세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추진하였다. 개성군에서는 2월 중에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 개성 북부 예배당의 목사인 강조원(姜助遠)에게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강조원은 호수돈여학교 출신으로 충교(忠橋)예배당 내에 있는 유치원 교사 권애라(權愛羅)에게 만세시위 계획을 상의한 것을 계기로 개성 내에서 만세시위 준비가 본격화되었다. 한편 호수돈여학교 학생회장 이경신(李瓊茞)과 그의 언니로서 미리흠(美理欽)학교 교사로 재직중인 이경지(李瓊芝)는 독립선언서가 강조원을 통해서 권애라에게 전달된 사실을 2월 말부터 호수돈여학교 기숙사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호수돈여학교와 호수돈소학교, 미리흠여학교 등의 학생들은 연락을 취하고 3월 3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1919년 3월 3일 아침, 호수돈여학교 식당에서 이경자는 독립선언서를 읽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호수돈여학교 교장 와그너(Wagner, 한국명 왕래(王來))가 나와서 이를 제지하고 이경자를 교장실에 감금하였다. 그럼에도 여학생들은 개성 헌병대로 향하였다. 이경신이 민족자결주의에 의거해서 조선의 독립을 주장한 연설을 하자, 학생들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 여학생들이 헌병대 운동장에서 만세를 외치자 1,000여 명의 군중이 헌병대 밖에서 합세하였다. 결국 개성군수가 등장하여 해산을 종용하였고 헌병대는 여학생들을 인솔해서 학교로 돌려보냈다. 한편 송도고등보통학교에서도 3월 3일 만세시위가 계획되었다. 송도고보 학생들은 일장기를 이용해서 태극기를 제작하고 3월 3일 저녁에 송도고보 학생 200여 명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행진하였다. 이때 많은 민중이 동참하여 독립만세를 제창하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때 고민용과 함께 송도면 북본정에 있는 조선 식산은행 부근에서 시위대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3월 4일 만세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일제 군경에 의해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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